미국의 대이란 제재 복원 시점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이란 통화인 리알화 가치가 폭락하고 있다. 이란 정부가 고시환율로 외환시장에 개입하고는 있지만 미국의 전방위 제재에 대한 공포감이 커지면서 투자자들이 리알화 투매에 나선 것이다. 외환당국은 최근의 외환시장 불안을 일부 범죄자들 탓으로 몰아가며 사태를 진정시키고 있지만 리알화 가치가 추가로 폭락할 수 있다는 투자자들의 불안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외환거래 웹사이트인 본바스트에 따르면 29일(현지시간) 리알화 환율은 전날 대비 13.4% 오른 11만2,000리알(매수호가 기준)에 거래되며 리알화 가치가 사상 최저치로 추락했다. 달러 대비 리알화 가치가 지난 4월 이후 절반으로 뚝 떨어지면서 환율은 연초 이후 158%나 치솟은 상태다.
리알화 시장 환율은 이란 정부의 고시환율과 상당한 격차를 보인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리알화 고시환율은 4만4,050.01리알로 시장 환율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이란 정부는 올 초부터 4월9일까지 고시환율을 3만6,000~3만7,000리알선으로 유지하다가 미국의 대이란 제재 부활 조짐으로 시장의 불안이 커지자 4월10일 전거래일 대비 11.02% 절하 고시했다. 이후 5월17일까지 한달여간 4만2,000.01리알로 동결했다가 5월 미국이 이란 핵협정 탈퇴를 공식화하자 환율을 4만4,050.01까지 높였다.
리알화 폭락사태는 미국의 이란 제재 재개를 앞두고 공포에 빠진 투자자들이 리알화 투매에 나섰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월8일 이란 핵합의 탈퇴를 선언하면서 두 차례에 걸쳐 이란 제재가 복원된다. 다음달 6일에는 이란 정부의 달러 매입이 금지되고 오는 11월4일부터는 이란산 원유 거래가 원천 봉쇄된다. 특히 2차 제재로 이란의 돈줄과도 같은 원유 거래가 끊기면 2012년 제재 때 리알화 가치가 한 달 만에 3분의1로 폭락했던 대혼란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공포감이 커지고 있다. 이란 중앙은행이 외화 통제를 위해 지난달 23일 소비재 물품 1,339개의 수입을 금지하고 수출입 업자의 외화거래를 1대1 방식으로 직거래하는 제도를 도입했지만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로이터통신은 “국가적 경제난이 심화하는 가운데 미국 제재를 앞두고 이란인들 사이에서 달러 수요가 급등하며 리알화 폭락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환차익을 노린 경제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등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게 돌아가자 그동안 외환위기를 외면했던 현지 국영방송도 환율 급등 소식을 다루기 시작했다. 이란 중앙은행은 이날 국영방송을 통해 “화폐가치 하락과 금 가격 급등은 모두 적들의 소행 때문”이라며 “경제를 악화시키고 대중의 불안감을 조성하려던 29명을 체포했으며 이들에 대한 사형선고까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란 사법부는 전날 고급차를 수입한다는 가짜 서류를 만들어 중앙은행에서 공식환율인 4만2,000리알을 주고 달러로 환전한 뒤 이를 암시장에 비싼 환율로 판 혐의로 고위공무원 5명 등 18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화폐가치가 폭락하고 필수소비재 교역까지 제한되는 가운데 시장은 하이퍼인플레이션의 공포감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22일 기준 연간 물가상승률이 10.2%로 집계된 가운데 2013년 경제제재로 물가상승률이 40%를 넘겼던 악몽이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수백개 물품 수입을 막으면서 수도 테헤란의 전통시장 그랜드바자르에서는 상인들의 시위가 격화되고 있다. 미국 경제매체 포브스는 실제 이란의 연간 인플레이션이 정부 공식 집계의 20배에 달할 수 있다며 “리알화가 2012년 9월 이후 또다시 죽음의 악순환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창영기자 k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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