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를 건너거나 교차로를 지날 때 인도 변 한쪽에 설치돼 있는 커다란 철제함을 보게 된다. 검지기 자료 수집과 신호등 운영을 담당하는 교통신호제어기다. 감전위험이 있는 220V의 고전압을 직접 신호등에 연결하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작동되며 화재 및 감전 위험을 안고 있다. 게다가 인도 한쪽을 덩그러니 점유해 보행권익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노후 신호기는 도시미관을 해치는 악성 시설물로 지목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총아’라는 자율주행기술의 상용화가 임박한 시점에, 이동 중인 차량 내에서 각종 디지털 라이프를 만끽하다 차창으로 스쳐 지나가는 흉물스런 아날로그 신호기를 발견한다면 과연 옛것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킬까.
이러한 아날로그 시설이 갖는 시대적 부조화는 겉모습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날로그 신호기는 정보제공을 위해 다단계의 변환장치가 필요하고 디지털 라이프 구현에 필수적인 네트워크 기능이 약해 자율주행 시대에 어울리는 디지털 서비스 등 차세대 이용자 편익을 증대시키는 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도로교통공단은 최근 인체에 안전한 저전압으로 디지털 네트워크 기술을 구현해 신호등을 제어하는 ‘차세대 디지털 교통신호제어기술’을 발표한 바 있다.
디지털 교통신호제어기술은 각 신호등과 신호기를 통신 네트워크로 연결해 신호등을 끄고 켜는 방식이어서 제어함의 크기를 현재 설치돼 있는 아날로그 신호기의 13% 미만으로 제작해 신호등 기둥 등에 부착할 수 있다.
보행자에게 보행공간을 되돌려줄 뿐만 아니라 도시미관을 크게 해치지 않는데다 화재를 방지하고 누설 에너지를 최소화시켜 준다. 도로가 물에 잠겨도 감전사고 위험도 없다. 더욱 중요한 점은 신호등과 신호기가 네트워크를 이뤄 아날로그 방식에 비해 교차로에서 자율주행 차량의 안전운전을 훨씬 더 잘 지원할 수 있다.
멀지 않아 도래하는 자율주행 시대에 어울리게 이동 중 이용자 편익을 확대하고 안전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자율주행 기술 발전과 병행해 이를 지원하는 인프라에 대한 기술 개발과 시설 투자도 동시에 이뤄져야 괴리감 없는 인간과 기술의 융화가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