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이 좋은 도시재생인가 하는 공론화가 본격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도시의 낙후된 어느 지역을 재생하니 외부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원주민은 떠나야 하는 젠트리피케이션과 같은 오작동이 빈번한 현실이다. 조진만 건축가는 주민이 빠진 도시재생은 ‘껍데기’라고 칭한다.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과정이 도시재생이기 때문에 주민이 가장 원하는 것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낙원상가는 지난 1969년 서울 종로구 낙원동에 지어진 주상복합건물이다. 현재는 세계 최대 수준의 악기 상가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악기에 관심 있는 몇몇 사람만 찾는 건물로 활기를 잃고 있다. 조 건축가는 지난해 낙원상가 재생사업 공모에 당선된 후 현재 실시설계를 마무리하고 연말에 착공을 앞두고 있다. 한강 유수지, 서울 고가도로 하부, 낙산배수지 채석장 프로젝트 등 연달아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해온 조 건축가는 도시재생 최전선에 서 있다. 그는 도시재생이 실패하지 않을 원칙으로 “원칙 없음”을 내세웠다. 반드시 현장에 가서 몸으로 부딪치면서 주민의 목소리를 경청하면서 미묘한 온도 차를 읽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낙원상가 도시재생의 경우에도 악기상가회와 대일건설 등이 참여한 주민설명회를 여러 차례 진행하느라 당초 6개월 계획이던 사업이 1년으로 길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원칙을 갖지 않고 뭐든지 될 수 있다는 열린 마음가짐이 그만의 도시재생 해법이다. 조 건축가는 “수많은 리서치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의견을 꿰다 보면 결국 하나의 핵심가치에 다다르게 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입체적인 도시재생법이 기존 도시재생과의 차별점이라고 힘줘 말했다. 낙후된 것을 단순히 고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쓰이지 않은 유휴공간·유휴부지의 가치를 발견해 입체화하는 것이다. 낙원상가의 경우도 없던 입체 데크를 만들고 공터인 옥상을 재조명해 사방으로 통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게 설계의 핵심이다. 그래야만 장소 자체가 가진 다목적 활용성에 대해 기존의 가치는 훼손하지 않을 수 있다.
조 건축가는 결국 도시재생을 주도하는 정부 당국이나 지자체가 조금 더 긴 안목으로 지역을 바라보기를 바랐다. 그는 “외적 디자인뿐 아니라 어떻게 운영할지까지 장기적으로 의견을 수렴하는, 천천히 가지만 꼼꼼히 가는 신중한 프로세스가 필요하다”면서 “역설적이게도 연속된 고가도로 하부 재생처럼 비슷한 유형의 도시재생 시설을 운영할 수 있는 전문적인 민간단체가 등장할 때”라고 말했다.
/이재명기자 nowl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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