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편지를 보고 나면 즉시 찢어버리든지 물로 씻든지 하라. 늘 한가지 염려가 떠나지 않는 것은 집 안에서라도 혹시 조심하지 않을까 해서이다. 경이 각별히 치밀하게 한다면 이런 염려가 어디서 나오겠는가?’(1797년 7월 7일) ‘소식이 갑자기 끊겼는데 경은 그동안 자고 있었는가? 술에 취해 있었는가? 아니면 어디로 갔었기에 나를 까맣게 잊어버렸는가? 혹시 소식을 전하고 싶지 않아서 그러했던 것인가? 나는 소식이 없어 아쉬웠다. 이렇게 사람을 통해 모과를 보내니 아름다운 옥(시)을 받을 수 있겠는가?’(1797년 6월 24일)
정조가 자신과 정치적 입장이 달랐던 노론 벽파의 핵심인물인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2009년 ‘정조 어찰첩’이 발견되면서 정조와 심환지가 오랫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점이 세상에 드러나면서 정치적 반대파의 수장과 물밑 소통을 하면서 대통합의 정치를 펼쳐나갔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편지에는 소탈하고 위트 넘치는 표현이 가득해 정조의 성격을 엿볼 수 있을 정도이다. 솔직하면서도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의견을 구하는 과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정창권 고려대 문화창의학부 초빙교수가 조선시대 왕과 사대부 등이 서로 마음을 주고 받은 편지를 모아 옛 사람들의 소통법을 소개하는 책 ‘정조처럼 소통하라’를 출간했다. 책은 정조, 선조, 명성황후 등 편지를 많이 남긴 왕과 왕비를 비롯해 이순신, 이황, 박지원, 정약용 등 선비의 편지를 주제별로 모았다. 또 전근가는 군관 나신걸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 유학 경전을 공부한 여성 성리학자 강정일당이 남편을 변화시킨 쪽지 편지 등 옛 사람들의 편지를 소개하면서 각자 나름대로 가진 소통의 비결을 소개한다.
정 교수는 에필로그에서 “편지로 주로 소통했던 옛 사람들은 오랫동안 생각한 내용을 최대한 자세히 적어 보냄으로써 충분히 느끼고 생각하도록 해 주었다. 요즈음에 비하면 한참 느리지만 깊이 있는 소통이 이루어졌던 것”이라면서 “편지 내용을 보면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면서도 상대를 존중하는 어법을 구사하고 있으며, 소통할 때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오해가 없도록 노력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아울러 웃음과 해학이 넘치는 글로 상대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엄격한 군율로 전장을 지휘했던 이순신 장군의 편지를 읽다보면 그의 섬세한 마음이 전해진다. 이순신은 아내 방씨와도 한글 편지를 많이 주고받았다고 하는데, 남아있는 편지가 없어 안타깝다. 책은 분초를 다투며 바삐 살아가면서도 직장 동료는 고사하고 가족끼리도 대화가 줄어들고 있는 현대인에게 솔직한 마음을 따뜻하게 전하는 소통 처방전이 될 것이다./ 장선화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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