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타인데이’에 대한 기대로 도시 전체가 들떠있던 1929년 2월14일 오전10시30분, 미국 시카고의 노스클라크가 2122번지 창고에서 갑자기 요란한 총소리가 났다. 경찰복과 정장 차림을 한 시카고 마피아 조직원 4명이 당시 시카고 북부를 장악하고 있던 범죄조직 2인자를 포함한 7명을 한 줄로 세워놓고 기관총 등을 난사했던 것. 경찰인 줄 알고 방심한 상대방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몰살당했다. 금주법이 만들어진 후 황금알로 떠오른 밀주사업을 둘러싼 갱들의 전쟁이 초래한 참사였다. 영화 ‘대부’의 한 장면으로도 유명한 ‘밸런타인데이 대학살’은 알카포네의 잔인함을 극명하게 보여주며 미국 전역에 충격을 안겼다.
1920년대 미국을 휩쓸었던 밀주사업은 산업도시 시카고를 갱의 도시로 바꿔놓았다. 알카포네를 비롯한 갱들이 도시를 장악하면서 거리는 도박과 음주·매춘이 넘쳐나는 무법천지로 변했고 대낮의 총격전도 다반사였다. 밀주와 마약 등으로 막강한 자금력을 확보한 갱을 건드릴 이는 별로 없었다. 알카포네의 대부 ‘빅 짐’ 빈첸초 콜로시모가 죽었을 때 다수의 시의원과 판사, 하원 의원이 운구에 대거 참가한 것은 이들의 강력한 영향력을 보여준다.
1933년 금주법이 풀리고 이후 대대적인 소탕작전이 벌어지면서 시카고 갱의 위세가 한풀 꺾인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밀주는 끝났지만 마약이라는 연간 수억달러에 달하는 돈줄을 쥐고 있으니 이들이 위축될 리 없다. 쿠바혁명 직후 미 정부가 시카고 갱 두목의 힘을 빌려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의 암살을 모의한 것이나, 지금도 도시에서 활동하는 갱이 59개에 이르고 파벌까지 치면 2,400개, 조직원도 10만여명이나 된다는 시카고범죄위원회의 발표 등도 이들의 위세가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시카고 거리가 지난주 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3일 밤부터 6일 새벽까지 벌어진 수십 차례의 총격전으로 최소 75명이 총상을 입었고 12명이 숨졌다고 한다. 이 중에는 11세 소년부터 62세 노인까지 포함돼 있다. 경찰이 추정하는 총격전의 원인은 갱 단원들의 충돌. 범죄조직들 간의 세력다툼이 도시를 100년이 넘도록 피로 물들이고 있다. 잘못된 것을 즉시 바로잡지 않으면 더 큰 비극이 온다는 교훈을 시카고는 온몸으로 말하고 있다.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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