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일본에서는 ‘무엇을 보수해야 하는가’에 대한 모호함 속에서 ‘반공’과 ‘경제성장’ 이외에는 공통의 가치관이 없는 거대 보수정당 자민당이 등장했다. 자민당은 거대 보수정당으로 오랫동안 집권하면서 급격한 산업화와 근대화를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냉전의 해제로 반공 키워드가 사라지면서 보수주의의 정체성 위기는 심화했다. 라이벌이었던 사회주의가 후퇴하면서 극우 성향이 강한 아베가 등장하는 등 보수주의가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여전히 내용은 없는 ‘보수주의의 위기’다. 신작 ‘보수주의란 무엇인가’의 저자가 말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보수주의의 모습이다.
우노 시게키 일본 도쿄대 사회과학연구소 교수가 보수주의를 탐구한 ‘보수주의란 무엇인가’는 ‘반프랑스 혁명에서 일본 현대까지’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그에 걸맞게 이 책은 에드먼드 버크, T. S. 엘리엇,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 등의 사상가와 미국의 신자유주의, 네오콘 그리고 일본의 마루야마 마사오와 후쿠다 쓰네아리 등을 통해 보수주의 전반과 일본의 보수주의를 살펴봤다.
보수주의에 대한 안내서이자 개설서라고는 하지만 저자는 ‘현대 일본에서 보수주의를 논하는 것이 어떤 의의를 가지는지 근본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이 책의 최대 과제’라고 하면서 현실 일본 정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기도 했다.
저자가 말하는 보수주의의 출발점은 프랑스 혁명이라는 급격한 진보주의에 대한 위화감에서 시작된 영국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의 사상이다. 버크는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이라는 책을 통해 프랑스 혁명을 비판했다. 한때 자유의 투사였던 그가 프랑스 혁명을 반대한 이유는 ‘과거에서 회귀해야 할 모범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추상적 원리에 기반을 둔 미래를 도약’했기 때문이다. 버크에게 있어 ‘보수한다’는 것은 낡은 것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었다. 버릴 것은 버리고 지킬 것은 지키는, 개인 이성의 한계를 종교, 경험, 역사적 축적을 통해 보완해 나가는 것이 그가 주장한 보수주의였다. 저자는 버크의 보수주의를 기준으로 두고 그 이후 등장한 보수주의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펴본다.
한국과 일본 보수주의에는 공통의 문제의식이 존재하는 만큼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도 크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의 보수는 힘을 잃은 반면 일본은 여전히 보수 정당인 자민당이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정체성이 애매하다는 문제는 같다. 양국 모두 ‘보수정당’이라고 자칭하는 정당들이 과연 진짜 보수주의를 이념으로 삼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보수 정당이 ‘반공’과 ‘경제성장’ 이외의 특별한 철학이 없는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역사적으로도 한국과 일본 모두 전통적인 정치체제가 오랜 시간 이어졌고 이를 단절시키는 것이 정치적 근대화로 나아가는 발판이었기 때문에 보수주의가 자리 잡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저자는 “역사적으로 뒤돌아볼 때 현대의 이른바 ‘보수주의’가 과거의 훌륭한 보수주의 사상에 대항할 정도의 수준과 내실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고 말한다. 오히려 현대 보수주의에 끝없는 ‘열화(성능과 기능 등의 특성이 떨어지는 현상)’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위기감에서 이 책이 구상됐다고 그는 말한다. 보수가 갈 길을 잃은 우리나라에서 이 책이 충분한 의미가 있는 이유다. 1만 5,000원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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