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와 자주포·장갑차 등의 개량사업이 활발하게 모색되고 있다. K1E2 전차와 K9A1·A2 자주포 K200A2 등 개량사업이 개념연구를 넘어 제안 단계에 들어섰다. 1980년대 중후반부터 1990년대에 생산을 시작한 이들 장비의 개량사업이 현실화하면 국산 기갑차량의 수령도 ‘환갑’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군은 중장기적으로 국산 기갑 장비의 수명 연한이 넘어가는 경우 무인화장비로 개조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신형보다 신기술 활용이 가성비 높아
M1·레오파트Ⅱ 등 美·獨 주력도 개량품
◇예산 절감, 신기술 도입의 타협점=군이 필요한 장비를 새로 사는 게 아니라 기존 장비를 고쳐서 쓰는 이유는 두 가지 정책 목표의 타협점으로 볼 수 있다. 한정된 예산으로 구형 장비를 신기술이 들어간 고성능 무기로 바꾸기 위함이다. 우선 군의 주요 기갑 장비들이 오래됐다. 아직도 ‘국산 신형 장비’라는 인식이 있지만 50년 묶은 미국제 구형 장비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형일 뿐이다. 운용 수량에서 육군의 주력 장갑차인 K200의 경우 처음 등장한 시기가 지난 1984년으로 이미 34년이 넘었다. 엔진 출력을 강화한 K200A1이 선보인 지도 30년에 이른다. 주력 전차인 K1도 마찬가지. 1988년 등장해 ‘88전차’로도 불렸던 K1 전차는 올해로 실전배치 30년을 맞는다.
군의 입장에서는 보다 신형이고 고성능인 K21 보병전투장갑차와 K2 흑표 전차로 교체하고 싶지만 문제는 돈이다. 미국이나 독일처럼 주력 전차와 장갑차를 모두 최신형 동일 장비로 통일하려면 예비 부품과 탄약을 합쳐 올해 국방예산과 맞먹는 돈이 필요하다. 신기술을 보태 창 정비 시기에 개조한다면 비용 대비 효과(가성비)가 높다는 연구 결과에 따라 군은 주요 장비를 계속 쓰되 고쳐서 쓴다는 결정을 내렸다.
◇미국·독일 등은 개량품이 주력=선진국에서는 구형을 신형으로 개량하는 사업이 지극히 자연스럽다. 우리나라는 장갑차와 자주포(K55A1) 정도를 부분 개수하는 정도에 그쳤지만 미국은 1980년에 나온 M1 전차를 무수히 개량하면서 쓰고 있다. 독일도 똑같다. 1979년 등장한 레오파트 Ⅱ 전차가 무려 일곱 차례 개량(A7)을 거치는 동안 우수성을 인정받아 영국·프랑스를 제외한 유럽국가들의 공통전차로 자리 잡았다. 기체 가격이 워낙 비싼 전투기의 경우를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보다 쉽다. 1980년대 이후에는 전차도 전투기처럼 개량하는 게 대세다.
미국·독일은 개량사업마다 신형 전차 개발에 버금가는 개발비를 투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산 자주포 K9의 성능에 만족한 북유럽의 한 국가에서 K2 전차 수입을 검토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개량에 개량을 거듭한 중고 재생 독일제 전차의 가격이 한국제 K2 전차 신품과 크게 차이가 없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국내 방산업체들의 경우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낮아 개량비용 역시 선진국에 비해 크게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수준과 견줘볼 때 국내 개량사업이 경제성이 있다는 얘기다.
2024년까지 엔진 재생 포함 대규모 정비
K1 전체 E2 사양으로…에어컨까지 장착
K200엔 기관총…장갑차 무인화도 추진
◇2024년 K1E2 전차 등장=군은 오는 2024년부터 K1 전차 전부를 E2 사양으로 개조할 계획이다. 구체적인 개량은 육군이 검토하고 있으나 손을 댄다는 사실은 확정된 상태다. 2024년부터는 엔진 재생을 포함해 대규모 정비 주기(12년)가 돌아온다. 군의 한 관계자는 “3차 창 정비가 도래하기 시작하는 2024년부터 E2 형식으로 K1 전차 전량을 개조하는 데 6~8년이 소요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차 생산회사인 로템과 육군 정비창의 사정에 따라 개량 시한은 더 짧아질 수도, 길어질 수도 있다. 개량될 K1E2 전차는 전량 보병사단에 배치될 것으로 알려졌다. 신형 흑표 전차 생산이 늘어날 경우 일부 동원사단에도 K1E2가 배정될 것으로 보인다.
개량 포인트는 크게 세 가지다. 방호력 및 생존성 강화와 기동력 향상, 전자장비 장착이다. 방호력은 K2 전차처럼 운동에너지탄과 화학에너지탄을 모두 막아낼 수준으로 높아진다. 신형복합장갑과 반응장갑이 부착될 계획이다. 생존성 강화를 위해 이때부터 양압장치와 에어컨도 장착된다. 전차장을 적의 저격이나 파편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포탑 내부에서 기관총을 발사할 수 있는 RWS(Remote Weapon Station)도 장착될 예정이다. 병력감축 시대를 맞아 승무원 수를 줄일 수 있는 자동장전장치도 도입된다. 장갑 강화와 각종 신형 장치를 부착할 경우 중량 증가와 기동력 저하는 당연지사. 육군은 1,200마력 엔진을 개수해 10% 출력을 향상시키거나 아예 1,500마력 엔진으로 교체하는 방안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다. 통신 및 전장환경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지휘 및 통신(C4I)도 부착될 예정이다.
◇K200 장갑차, 34년 만에 대변신하나=기본형만 1,700여대나 깔린 K200 장갑차도 선보인 지 34년 만에 대규모 개량을 앞두고 있다. 흑표 전차나 개량형 K1 전차와 공동작전이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육군은 미래 전장환경에서 현용 K200A1 장갑차가 적합한지를 검토한 끝에 개량이 된다면 ○○지역에서는 일선급 장갑차로 활용 가능하다는 결론을 최근 내렸다. 다만 아직은 검토 단계다. 생산업체인 한화디펜스의 제안과 육군의 검토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개량 포인트는 장갑강화형 이스라엘군 M113 장갑차 수준의 방호력 강화와 RWS(기관총) 부착. 기존 K200의 톤수 대비 엔진 출력에 여유가 있어 엔진은 그대로 활용될 예정이다. 육군의 한 고위관계자는 “선진국의 경우 산악사단이라는 이름의 보병사단을 제외하고는 걸어 다니는 보병은 이제 없다”며 “우리 군도 보병 전 병력을 방탄 기능을 갖춘 기동장비에 탑승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주목할 점은 군이 ‘산업혁명 4.0’과 연계해 미래 전력을 구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장의 정보를 모으고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C4I는 물론 기동장비에 인공지능(AI)을 심는 방안도 강구되고 있다. 장갑차를 무인화하고 유·무인 복합 시스템 운용도 연구되고 있다. K200A2 장갑차를 무인화하면 승무원을 하차보병으로 돌릴 수 있는데다 위험지역 강행 돌파를 맡길 수도 있다. 전차와 장갑차의 무인화는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상당한 수준으로 연구를 진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K200A2와 별개로 보기륜을 하나 늘려 6개로 확장한 다목적 장갑차도 개념연구 단계를 밟고 있다. 기존 K200A1 장갑차를 이 사양으로 개조도 가능하다.
◇ K9A1 자주포 8월 말 첫선, A2도 개발=유망 방산수출품으로 자리 잡은 K9 자주포 역시 진화한다. 이달 말부터 K9A1 자주포가 나온다. 양산이 종료되는 내년 말까지 군에 보급될 K9A1은 자동사격통제장치를 도스(DOS)에서 윈도(Window) 체제로 바꿨다. 보조동력장치(APU)를 달고 조종수 야간잠망경을 열상형으로 교체, 야간 전투능력을 끌어올렸다. 위성항법시스템(GPS)을 추가하고 안전 확보를 위해 후방카메라도 달았다. 육군은 기존 K9 자주포 전량을 A1 사양으로 개조할 계획이다. 앞으로 전방사단 포병은 최대구경 화포인 155㎜ K9A1 자주포 또는 K55A1 자주포로 무장하고 견인식 155㎜포는 동원사단으로 돌려지거나 전시를 대비해 치장물자로 지정될 예정이다.
K9A1 생산 배치와 동시에 A2 사양도 개발에 들어갔다. 탄약 장전 자동화로 인력을 줄이고 포탑을 전기식으로 구동하며 고장 진단 및 예측 시스템, 고장 배제 제어기술이 적용될 것으로 알려졌다. 발사 속도 역시 50%가량 높아지고 반자동으로 이뤄지던 포탄과 장약 장전, 신관시한 장입을 완전자동화하는 게 목표다. 내부와 외부에 원격 운용장치를 달아 무인화, 혹은 유·무인 복합화하는 것도 연구과제다. 최근 포병학교 세미나에서 발표된 K9A2 생산은 2020년대 후반부터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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