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국 상하이에서 20대 여성이 시진핑 국가 주석의 초상에 먹물을 뿌린 사건 이후 중국 전역에서 시 주석에 대한 ‘개인숭배’ 흔적 지우기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먹물을 뿌린 이 여성은 정신병원에 강제수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국제라디오방송(RFI)는 10일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을 인용해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지난 8일까지 1면에 7일간 연속해서 시 주석과 나머지 6명의 정치국 상무위원의 동정을 보도하지 않았다며 이는 극히 드문 일이라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또 지난 한달 동안 베이징을 비롯한 중국 전역의 주요 도시에서 시진핑 초상화와 선전구호들이 은밀히 철거됐다고 전했다. RFI는 중국 각지의 건축물 외벽에 걸린 ‘시진핑시대 중국 특색사회주의사상’이라는 선전구호와 시 주석 초상화 등이 사라졌다고 덧붙였다.
앞서 중국은 지난해 10월 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 이후 시진핑을 공산당의 ‘핵심’으로 삼아 마오쩌둥(1893∼1976)과 동급의 ‘개인숭배’를 시작했다. 지난 3월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기간에는 주석직 임기제한을 철폐하는 헌법 수정이 이뤄져 시 주석의 위치는 한층 더 격상됐고 각지의 주요 거리와 기관, 학교, 농촌 등에는 시 주석의 두상과 조각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달 전 먹물 투척사건으로 중국 당국의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상하이에 거주하는 한 여성이 “시진핑의 독재적이고 전제적인 폭정에 반대한다”고 주장하며 시 주석의 사진에 먹물을 끼얹는 모습을 스스로 동영상으로 찍어 유튜브에 올렸기 때문이다. 29세의 둥야오충은 지난 7월 4일 오전 상하이 푸둥 루자주이에 위치한 고층건물인 하이항다샤 앞에서 시 주석 얼굴이 그려진 ‘중국몽’ 선전표지판에 먹물을 끼얹는 장면을 트위터로 중계했다. 이어 “시진핑 독재 폭정에 반대한다”고 외치고는 자신이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정신적 억압을 받아왔다고 주장했다. 영상 말미에는 “시진핑, 여기서 나를 잡으러 오기를 기다리겠다”고 말하는 장면이 담겼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둥야오충의 아버지 둥젠뱌오는 지난 1일 “딸이 이유 없이 정신과병원에 수용돼 있다”며 집으로 보내달라고 요구하는 성명을 인터넷에 올렸다. 그는 이날 아침 일찍 성명을 올릴 후 딸이 입원해 있는 병원을 방문, 면회를 요구하다 공공안전에 위해를 가한 혐의로 경찰 당국에 구속됐다. 후난성에 사는 탄광노동자인 둥젠뱌오는 “딸이 정신병자라는 걸 믿을 수 없다”면서 딸의 퇴원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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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서 익명을 요구한 학계의 인사는 각급 정부가 시 주석 관련 사진과 선전물을 철거토록 한 것은 ‘먹물사건’과 관련이 있다면서 “이것은 정말 인터넷의 힘이며 인터넷이 없었다면 후난의 한 여자애가 상하이에서 저지른 경천동지할 일을 누가 알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둥야오충의 ‘먹물사건’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무역전쟁이 더해지면서 중국인들은 중국의 실체를 깨닫게 됐다면서 몇 개의 칩 부품에 중국이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한편 중국에서 시 주석에 대한 개인숭배에 대한 흔적 지우기는 진행되고 있지만 그에 대한 풍자는 여전히 차단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난 3일 미국 연예 매체 할리우드리포트는 “디즈니의 ‘크리스토퍼 로빈’이 중국 당국으로부터 상영 허가를 받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는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라는 제목으로 오는 10월쯤 개봉 예정이다.
할리우드리포트는 “중국 당국이 상영 불가 사유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에서 푸 캐릭터가 시 주석을 풍자하는 소재로 쓰이는 점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앞서 중국은 지난 6월 말에도 미국 HBO채널 웹사이트와 이 채널의 코미디 쇼 진행자 존 올리버의 이름이 인터넷에서 검색되지 않도록 차단한 바 있다. 당시 올리버가 코미디쇼에서 시 주석을 푸에 빗대는 콘텐츠가 중국 내에서 검열되고 있다고 말하는 등 비판적 내용을 내보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박홍용기자 prodig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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