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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이 만난 사람] 김유찬 원장 "국가채무 현 수준 벗어나면 안돼...복지확대 지속 땐 증세 불가피"

<김유찬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원장>

나랏빚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대외변수 취약·재정 지출 많아 대비를

소득주도 성장 핵심은 소비...주거·교육비 부담 덜어줘 돈 쓰게 해야

최저임금, 자영업 등 물 목까지 찼는데 더 부은 것...유연한 정책 필요

김유찬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원장




/대담=김영필 경제부차장 susopa@sedaily.com

내년 정부 예산은 올해보다 7% 중반 이상 늘어난 ‘초슈퍼 예산’으로 편성될 예정이다. 최소 460조원대 이상이다.

하지만 생산과 소비·투자 등 산업지표의 부진이 이어지고 있고 ‘고용 쇼크’에서 벗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 경기가 주저앉을 것이라는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종합부동산세에 이어 공시가격 현실화 같은 보유세 문제도 남아 있다. 어느 때보다 조세재정 정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시기다.

우리나라 조세재정 분야의 최고 싱크탱크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분석은 어떨까. 지난 대통령선거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경제정책 밑그림을 그린 김유찬(61·사진) 원장은 “국가채무는 현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면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이를 위해서는 내후년 이후에는 결국 증세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소득주도 성장의 핵심은 소비진작에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4월26일 취임해 이제 100일을 넘긴 김 원장을 6일 세종시 집무실에서 만나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들어봤다.

우선 김 원장은 “적정 채무라는 게 사실 어느 정도가 적정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일반적으로 국가부채가 늘어나는 게 좋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지금이 매우 높은 수준은 아니라는 게 김 원장의 판단이다. 지난해 기준 국가채무(지방정부 포함)는 약 661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38.6%다. 전년 대비 0.3%포인트 증가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의 절반에 못 미친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이나 일본과 차이가 있다. 김 원장은 “전 세계에 달러를 공급하는 미국이나 자국민들이 국채를 충분히 사주는 일본은 국가채무가 빠르게 늘더라도 버틸 수 있지만 (외부 경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어려움이 있다”며 “적정 채무 수준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현재 수준을 많이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글로벌 경기 변화에 취약하고 외환위기를 겪었기 때문에 다른 선진국보다 채무비율이 낮다고 안심할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문제는 지출이다. 문재인 정부는 복지를 계속 늘리고 있다. 지난달 정부는 향후 5년간 12조6,000억원의 세수가 줄어드는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다. 저소득층에 대한 근로장려금(EITC)과 자녀장려금(CTC) 지급을 대폭 늘린 탓이다. 이 경우 다른 변수가 없으면 빚이 늘게 된다. 김 원장은 “재정지출이 계속 확대되는 상황에서 세수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는 만큼 증세가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증세 대상으로는 자산소득을 꼽았다. 그는 “임대소득이나 금융소득, 부동산 관련 세금의 경우 다른 세금에 비해 세 부담이 특혜적으로 낮다”며 “이런 부분을 계속 둘 수 없다”고 했다.

이 가운데 종부세는 주택 소유자들의 부담이 크게 늘어난 것은 아니라고 봤다. 주요 증세 대상인 과세표준 6억원 이상 주택의 시가가 20억원 정도인데 이를 고려하면 소수의 납세자만 세율이 올랐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거래세 인하는 조건부로 찬성했다. 그는 “보유세가 많이 오른다면 거래세를 낮출 필요가 있다”면서도 “우리나라가 OECD 대비 거래세가 높다고 하지만 그만큼 이사도 많이 다니고 부동산도 자주 사고팔기 때문에 전체 금액이 많은 것”이라며 거래세 인하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이어 “보유세가 시장 억제 기능을 하게 되면 거래세를 낮출 수 있을 것”이라며 “지금은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모든 국민이 세금을 내야 한다는 국민 개세주의에도 다른 입장을 내놓았다. 그는 “국민 개세주의는 헌법에 있는 개념은 아니다”라며 “일반적으로 소득세 면세자를 얘기할 때 꺼내는 개념인데 부가가치세나 지방세등을 통해 모든 국민이 다 세금을 내고 있기 때문에 소득이 충분하지 않은 사람에게 굳이 소득세를 부과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증세 이외에는 조세감면을 줄여야 한다고 했다. 김 원장은 “세수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조세감면을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정부는 택시 부가가치세와 농어업인 유류세 등 대부분의 조세특례제도 일몰을 연장했고 내수 경기를 살리기 위해 한시적으로 자동차의 개별소비세 인하 조치를 단행했다.



지금의 경기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는 지난 20년에 걸친 대기업 위주 수출주도 경제와 소득 양극화 문제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해석했다. 김 원장은 “우리 경제가 최근에 특별히 어려워진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성장률이 떨어지며 좋지 않은 상황이 지속됐다”고 진단했다.

“기업은 번 돈을 내부에 쌓아놓았고 가계는 돈을 쓸 여력이 없었어요. 젊어서는 내 집 마련을 위해, 아이를 낳으면 막대한 교육비에 휘청이고 아프면 병원비 걱정이죠. 고용이 악화되다 보니 노후에도 연금이 넉넉지 않은 이런 두려움이 허리띠를 졸라매게 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새 정부가 내세운 소득주도 성장은 소비진작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단순히 임금만 올리는 것보다 이것이 소비진작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고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김 원장은 “소비를 늘려야 경제 선순환이 가능하다”며 “소득주도 성장도 결국 포인트를 거기에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사회보장제도와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늘리고 공공임대주택을 대거 보급해 사람들의 불안감을 덜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집값도 절대적으로 안정화해야 한다는 게 김 원장의 주장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순서의 문제로 봤다. 경기 악화와 가격 경쟁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이들이 버틸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게 됐다는 얘기다.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에 대해서는 “그럴 필요성이 있을 것”이라고 봤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이 어렵게 됐다”며 사과했다.

“최저임금은 어려운 여건에 있는 저소득 근로소득자들과 힘들게 자영업하는 분들 사이에 이해관계가 충돌돼요. 자영업자나 중소기업들이 경기악화와 임대료 부담 등으로 물이 목까지 찬 상황에서 최저임금으로 물을 더 부은 것이라고 봅니다. 순서의 문제는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목까지 물이 찬 상황을 개선하는 게 중요합니다. 임대료와 카드수수료·프랜차이즈 문제를 들여다봐야겠지요.”

하지만 이는 논란이 많고 시간이 걸린다. 689만명에 달하는 자영업자의 숫자가 지나치게 많다는 게 핵심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의 단순 지원보다는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경제성과가 나오지 않을까 조급하다”고 할 정도다.

김 원장은 유연성을 주문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초지일관 정책을 유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작은 것에는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노선이 한쪽으로 치우쳤을 경우에는 적절한 수정이 필요할 것”이라며 “소득주도 성장의 효과가 사회 전반에 퍼지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릴 수도 있다. 경제성장이나 삶 전체가 좋아지려면 조금 참아달라고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정부의 조세재정 정책의 효과를 국민들이 이해하기 쉽게 알리겠다는 포부도 드러냈다.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눈높이에 맞는 설명과 자료가 필수다. 김 원장은 “국민들에게 조세재정 정책의 효과를 잘 설명하는 것이 연구원의 가장 큰 임무 가운데 하나”라며 “지금까지는 조세와 재정이라는 전통적인 영역을 다루다 보니 크게 신경 쓰지 못했는데 앞으로는 정부의 성과를 국민들에게 쉽게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세종=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 사진제공=한국조세재정연구원



[약력]김유찬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

△1957년 대구 △서울대 원예학과 △독일 프라이부르크대 경제학 학사 △독일 함부르크대 경제학 석·박사(국제조세)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 △계명대 세무학과 교수 △중부지방국세청 납세지원국장 △홍익대 경영대학 세무대학원 교수 △정책기획위원회 재정개혁특별위원회 위원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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