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을 지원해야 할 더불어민주당이 소수 강경파 의원에 휘둘려 규제혁신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의 규제혁신 행보에 민주당이 딜레마에 빠진 형국이다. 지지층은 물론 당내 일부 의원들이 규제 완화 문제를 당의 정체성과 결부시키며 반대하고 있어서다. 인터넷은행에 대한 은산분리 완화를 시작으로 개인정보 공개, 원격의료 등 풀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실제 입법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일부 의원들이 ‘규제 완화=친기업’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규제혁신을 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청와대가 발표한 인터넷은행에 대한 은산분리 규제 완화 방침에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하나둘 나오고 있다. 민주당이 그간 당내 이견이 분열로 비치는 모습을 극도로 꺼려왔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경우다. 2년간 국회 정무위원회에 몸담았던 박용진 의원이 처음으로 제동을 걸었다. 박 의원은 지난 8일 “(은산분리 완화 반대는) 우리 당론이었고 대선공약이었다”면서 “당 차원에서 정책의원총회를 열고 당론 변경을 위한 합당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영선 의원도 문제 제기에 나섰다. 여야 원내지도부가 인터넷은행 상장 시 산업자본의 지분보유 한도 상한선을 34%로 잠정 합의한 점을 꼬집었다. 그는 “국회에 제출된 법안들처럼 지분보유 한도를 34% 이상 수준으로 완화하면 과도한 자본부담으로 결국 대기업이 아닌 중견기업의 인터넷은행 진출에 과부하가 걸릴 수 있다”며 최대주주가 금융자본일 경우에만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보유 한도를 25%까지 허용하는 내용의 인터넷 전문 은행 특례법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큰 틀에서는 정부의 정책 기조에 공감하지만 은산분리라는 대원칙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야권은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며 민주당 원내지도부가 ‘집안 단속’에 나서주기를 바라고 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13일 여당에서 제기되는 속도 조절론을 의식한 듯 “현 시점에서 정부 여당의 확고한 처리 의지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며 “여기서 흔들리면 또 안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와대가 전방위 규제혁신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는 만큼 민주당에서 이 같은 내분이 반복될 여지가 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원격의료 도입을 위한 의료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청와대와 여당 원내지도부는 의료법 개정안 처리에 전향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내부 의견에 대한 교통정리가 좀처럼 이뤄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개정안을 심사해야 하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들은 아직 원격의료에 반대 또는 유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2015년부터 당론으로 의료법 개정안을 반대해왔다. 개인정보 보호 규제 완화 문제도 마찬가지다. 민주당과 정책적 호흡을 같이하고 있는 참여연대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민주당이 앞장서 법 개정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기류에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규제 완화 문제를 놓고 당내 이견 조율 과정에 나설 계획이다. 실제로 원내대표단은 14∼15일 강원도 평창에서 상임위 간사단과 정기국회 운영전략을 논의하기 위한 워크숍을 진행한다. 이어 31일에는 전체 국회의원 워크숍을 통해 지도부 입장을 전달하고 토론할 예정이다.
당내 이견이 정리된다고 해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규제 완화 문제에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환영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한국당·바른미래당 등 3당이 함께한다면 법안 처리에 절차적 문제는 없겠지만 상가임대차보호법 등 민생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범진보 진영과의 공조가 필수적이기에 민주당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정연기자 ellenah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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