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중국·유럽연합(EU) 등 거대 경제권을 겨냥한 무역전쟁의 포문을 연 데 이어 개발도상국들에 부여하는 특혜관세를 재검토하며 통상분쟁의 전선을 약소국으로까지 확대하고 나섰다. 트럼프 정부는 대미 무역흑자가 커지는 일부 개도국들에 대한 특혜관세 폐지를 앞세워 미국산 제품의 수입 확대를 압박하는 전략으로 관련 국가들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개도국이나 저개발국의 특정 대미 수출제품에 무관세 지위 등을 부여하는 ‘일반관세 특혜제도(GSP·Generalized System of Preferences)’를 계속 유지할지 여부를 놓고 국가별 검토에 나섰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은 지난 1976년부터 도입한 GSP 프로그램을 통해 피지·에콰도르 등 121개 개도국 및 저개발국의 특정 수출품에 대해 무관세 등 특혜관세를 부여하고 있다. 한국도 개도국 시절 GSP의 수혜를 입었지만 경제성장으로 1989년 졸업했다. GSP는 미국뿐 아니라 EU·일본 등 선진 경제국들이 운용하는 제도로, 통상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6,000달러를 넘으면 수혜국에서 제외된다.
보도에 따르면 USTR은 GSP의 혜택을 받는 121개국 중 우선 아시아태평양의 25개 국가를 상대로 특혜관세 지위 재검토 작업을 벌이고 있으며 올가을부터는 동유럽이나 중동·아프리카 국가로 대상을 확대할 예정이다. 미 정부는 과거 인권단체나 노조의 청원 및 항의를 근거로 GSP 수혜국 자격을 재검토한 적은 있지만 사실상 개도국의 시장개방 확대를 위해 GSP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것은 트럼프 정부가 처음이다.
이와 관련해 연간 각각 56억달러와 42억달러의 수출이 GSP의 혜택을 받아 무관세로 이뤄지는 인도와 태국, 20억달러를 수출하는 인도네시아가 이미 미국으로부터 관세 특혜 지위를 상실할 수 있다는 통보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초에는 최근 미국 목사 억류 속에 통상분쟁이 거세지고 있는 터키가 GSP 특혜 제외 검토국에 포함됐다고 WSJ는 보도했다.
미국은 인도에 낙농제품과 의료장비 수출에 대한 무역장벽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태국에 대해서는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을 검역과정 규제로 사실상 막고 있는 점을 들어 ‘특혜관세’ 철회를 위협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도네시아에도 무역·투자장벽을 낮추라고 요구하고 있다.
WSJ는 2016년 기준 미국의 총수입 2조2,000억달러 중 GSP의 혜택을 받은 제품은 약 190억달러로 전체의 1%도 안 돼 미국 입장에서는 미미하지만 특혜관세 혜택을 받는 국가나 업계 종사자들에게는 중요한 경쟁력이어서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 호혜적 무역’을 주장하며 GSP를 시장개방의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태국의 6개 지방 돈육협회 대표들은 트럼프 정부에 공개적으로 “태국의 돼지고기 시장은 이미 공급과잉으로 미국산 돼지고기마저 들어오면 재앙이 될 것”이라며 “시장개방 압력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고 WSJ는 전했다.
싱가포르 소재 아시아무역센터의 데버러 엘름스 사무국장은 “미국이 양자 무역협정 또는 다른 양보를 상대국으로부터 얻어내기 위해 GSP 재검토를 이용하고 있다”며 “해당 국가에 미국은 큰 시장이어서 GSP 재검토만으로도 상당한 위협이 된다”고 말했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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