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가 생기기 전에는 고교야구의 인기가 많았다. 고교야구에서는 한 선수가 여러 포지션을 소화하는 경우가 흔했다. 빈틈없는 수비를 자랑하던 유격수가 투수로 기용돼 뛰어난 투구를 보여주기도 하고 든든한 포수가 장타자인 경우도 있었다. 선수층이 얇아 어쩔 수 없이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해야 하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을 것이고 운동신경이 좋은 선수들을 여러 포지션에 쓰고 싶은 감독의 용병술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포지션을 소화해봤기 때문에 투수나 타자로 더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프로에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는 선수들을 보면 과거 중고등학교 시절 다른 포지션을 맡았던 경우가 많다. 모르기는 몰라도 그 경험이 현재의 포지션에서 뛸 때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점점 한 분야의 전문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다. 평생직장보다 평생직업이 대세이고 대기업에서 두루 다양한 경험을 하기보다 젊을 때부터 자기가 좋아하는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는 문화도 확산하고 있다. 외국계 기업에 입사하려는 젊은이들에게 물으면 “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기를 수 있어서 좋다”는 대답을 많이 한다. 실제로 외국계 기업들에는 십수 년을 한 분야에서만 근무한 스페셜리스트가 많다. 한 분야에서 오래 근무한 전문성을 발휘하며 다른 회사로 옮겨 가기도 한다.
그런데 스페셜리스트를 지향하면서도 제너럴리스트로 넓은 시각을 가지는 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한 분야에서만 근무하면 자칫 시야가 좁아지고 다른 부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지기 쉽다. 어떤 조직이든 중간 관리자 이상으로 올라가면 개인의 능력과 전문성 외에 다른 부서와 소통하고 협력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때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조직 외부의 이해관계자들과 접촉해 입장을 관철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아직도 많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순환보직을 근간으로 제너럴리스트를 배출하는 경력관리 체계를 가지고 있다. 현장 영업을 경험한 마케팅 전문가나 재무 지식이 있는 홍보담당자가 더욱 차별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의 전문성 향상에 집중하면서도 항상 다른 분야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며 소통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혹시 간혹 내 분야가 아닌 일을 할 기회가 생긴다면 ‘경력 관리에 도움이 안 된다’고 무시하기보다 자기 발전을 위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뛰어들어보기를 권한다. 전문성을 키워가는 과정에서 ‘역지사지’의 태도를 간과한다면 그저 편협한 안목을 지닌 기술자에 그칠 수도 있다. 탑을 높이 쌓으려면 기단부터 넓게 자리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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