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이 지난해 6월부터 올해 8월까지 조사 중인 옥천 제2의료기기 산업단지 부지 내 유적에서 7세기 신라 고대 도로가 확인됐다고 16일 밝혔다. 도로 발굴 과정에서는 7세기 신라 토기·기와부터 조선 전기에 해당하는 백자 등도 함께 나왔다. 이러한 점을 미뤄 봤을 때 이 도로는 신라에서 조선 전기까지는 교통과 군사상 도로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에 확인된 도로는 남동-북서 방향으로 진행하며 산 정상부근 사면과 계곡부를 이어 조성된 것으로, 길이는 약 320m가 넘는다. 노면 폭은 약 5.6m에 달하고, 도로의 표면에는 수레바퀴 자국과 수레를 끌었던 짐승의 발자국도 뚜렷하게 남아있었다. 이 도로는 1886년경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목적으로 작성한 지형도에도 ‘소로(小路)’로 표시되어 있다.
도로 외에도 청동기 시대 주거지·구덩이(수혈)유구·삼국 시대 토광묘·고려 이후의 토광묘와 주거지, 조선 시대 토광묘·구덩이·도랑유구 등이 발견되었으며, 고려 시대 청자 조각, 조선 시대 백자 조각과 청동 숟가락 등도 발견됐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하면 옥천은 신라의 관산성이 있던 곳으로 관산성은 554년 신라가 백제 성왕이 이끄는 3만의 군사를 궤멸시킨 곳이다. 이후 백제와 신라가 이 지역에서 치열하게 싸웠고, 660년 백제 통합 전쟁 시에도 신라의 진군로에 자리한 군사 거점이었다.
이같은 역사적 사실과 도로에 대한 발굴조사 성과를 고려할 때 이 도로는 늦어도 7세기 이후 신라가 백제를 공격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성된 관용도로인 관도(官道)로 추정되며, 더 나아가 ‘삼국사기’ 신라본기 671년 기록에 등장하는 보은·옥천 방면에서 대전을 거쳐 공주(웅진)에 이르는 신라의 중요 군량 운송로인 웅진도(熊津道)의 일부로 추정할 수 있다. 이 도로가 평지나 능선 사면부가 아닌 산 정상부근인데도 불구하고 직로로 개설된 것으로 보아 가능한 한 직로로 만들어 군수물자를 쉽게 이동하려는 군사적 목적의 관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관계자는 “신라의 관도가 발굴조사를 통해서 확인된 예는 대부분 서라벌(현재의 경주)과 그 인근으로, 서라벌과 지방을 연결하던 관도가 확인된 사례는 거의 없었다”며 “이번에 확인된 고대 도로는 왕경이 아닌 지방에서 신라의 관도가 확인된 최초의 예로서 주목된다”고 밝혔다. 아울러 “신라와 백제의 각축지인 옥천 지역에서 조사된 고대 도로를 통해 신라 왕경과 지방을 연결하는 관도의 존재를 확인하였다는 점에서 신라의 도로문화의 전모에 다가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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