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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번안사회] 돈가스부터 아파트까지…뿌리깊은 식민 잔재

■백욱인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일본이 받아들인 서양 근대문물

다시 한국 전해지며 '이중 번안'

산업화 과정 거쳐 지금껏 답습

일상에 스며든 왜색 지적하며

경각심 없이 수용한 현실 비판





전투식량으로 유명한 건빵의 뿌리는 서양 비스킷이다. 일본군이 서양에서 항해사나 군인의 비상식량으로 쓰인 딱딱한 비스킷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건빵을, 포르투갈에서 16세기에 전해진 설탕 과자를 변형해 별 과자로 만들어 이를 군용 비상식으로 활용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비상식량이었던 건빵은 한국전쟁 시기에 한국으로 들어왔다. 돈가스 역시 독일·오스트리아의 슈니첼, 영국·미국의 커틀릿, 일본의 가쓰레쓰를 거쳐 현재 우리가 즐기는 돈가스로 자리 잡았다. 먹을거리뿐 아니라 우리 삶 속 번안물은 셀 수 없이 많다.

신간 ‘번안사회’는 한국 근현대사를 번안이라는 키워드로 돌아봤다. 번안이란 원작의 내용이나 줄거리는 그대로 두고 풍속, 인명, 지명 따위를 시대나 풍토에 맞게 바꾸어 고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급격한 사회 변동기나 바깥으로부터의 문화가 급격하게 밀려올 때 번안 작업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특히 한국 근대화 시기의 번안은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복잡해졌다. 식민 지배를 겪은 한국은 서양을 직접 대면하는 대신 일본을 통해 서구의 근대 산물을 받아들이고 일본이 한 번 번안한 ‘일본식’ 양식을 번안했다. 그리고 이것은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의 근대화 과정에 다시 한 번 번안된다. 해방 이후에도 식민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답습한 것이다. 이 같은 과정 속에서 우리는 식민지 시대가 남긴 유산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힘들어졌고, 식민 잔재의 청산을 말하는 동시에 식민지의 유산을 향유하는 모순을 반복하고 있다. 저자인 백욱인 교수는 “번안물의 정체를 밝히려는 이유는 거기서 무엇을 청산하고 무엇을 보존해야 하는지 살피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신작은 1930년대 식민지와 1960년대 근대화의 현장을 오가며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번안의 흔적을 살펴본다. 우리나라에서 식민지 시대의 번안은 왜 1960년대 산업화 시대에 그대로 반복되었을까? 저자는 “식민지 시대에 성공한 사람들이 산업화 근대 시기에 각 분야에서 다시 권력을 잡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1960년대 학교의 조회 풍경이 1930년대 애국조회 풍경과 닮아 있는 것이나 그때마다 실시한 ‘국기에 대한 맹세’가 식민지 시대 ‘황국 신민의 서사’를 읊는 것과 동일하고, 아파트 단지나 고가 건설 등 근대 서울의 재편이 일본의 것을 그대로 베껴와 진행된 것이라는 사실 등 우리가 늘 접해온 일상 속 번안 사례는 셀 수 없다.

일상의 문화사를 살핀 만큼 이 책은 각종 대중매체에서 발췌한 풍부한 사진 자료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 사회학자인 저자는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해 각 번안물들의 기원을 추적했다. 신문이나 잡지의 기사, 광고, 만화 등은 물론 당대 쓰이던 라디오, 달력, 미술품, 간판 사진에 이르기까지 당대 일상을 보여주는 도판을 선별했다. 1930년대와 1960년대 이루어진 번안의 연속성 및 차이와 서양, 일본으로부터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지 시각적으로 직접 비교해볼 수 있다.

저자는 우리가 행한 번안 행위 자체를 문제 삼고 있지는 않다. 다만 그 속에 담겨 있는 식민성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채 그것을 무신경하게 수용해온 한국 사회의 현실을 비판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일제 번안물을 벗어나기 위한 가장 유력한 방법은 그것을 직시하고 의도적으로 폐기하는 수준을 넘어 더 이상 그것이 필요 없는 근거와 터전을 만드는 길”이라고. 1만 9,000원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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