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무역전쟁 중이거나 강력한 제재를 받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터키가 미국 국채를 대거 매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막대한 대미 무역흑자로 시장개방 압력이 커지고 있는 일본과 독일 역시 미 국채 보유액을 크게 줄여 글로벌 채권시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시장에서는 “미 국채 매도는 가장 위험한 무기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19일 로이터와 블룸버그 등이 분석한 미 재무부 통계에 따르면 외국 투자가들은 지난 6월 미 채권을 486억달러(약 54조7,000억원)어치 내다 팔았다. 5월 해외에서 미 국채 매입이 267억달러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한 달 만에 완전히 상반된 결과다.
미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한 중국과 일본이 ‘팔자’에 적극 나선 것이 영향을 미쳤다. 중국의 6월 기준 미 국채 보유액은 1조1,787억달러로 전월 대비 44억달러 줄며 2월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특히 미 국채 보유액 2위인 일본은 184억달러를 매각해 2011년 이후 7년 만에 가장 낮은 1조304억달러로 떨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자동차 추가 관세부과 표적 중 하나인 독일도 6월 71억달러의 미 국채를 매각해 보유액이 712억달러로 감소했다. 릭 뉴먼 야후파이낸스 칼럼니스트는 17일 중국 등이 미 국채 매각을 늘린 점을 언급하며 “이는 중국의 가장 위험한 무역전쟁 무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의 미 국채 보유 비중이 전체의 6%에 불과하지만 중국의 급매도로 금융시장이 흔들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장 분석가들은 급매도 현상이 벌어지면 미 국채금리를 30bp(1bp=0.01%)나 올릴 수 있다면서 이는 트럼프 정부가 재정확대를 위해 국채 발행을 늘리는 상황에서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시장금리의 바로미터인 미 국채금리가 오르면 기업과 가계의 대출이자 부담이 늘면서 소비와 투자심리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막대한 부채를 진 미 정부의 이자 비용이 늘면서 재정상황이 빠르게 악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미 국채 매각을 당장 전략무기로 활용하는 곳은 중국보다 러시아다. 크림반도 무단 병합과 미 대선 개입에 이어 영국 내 스파이 암살 시도로 미국으로부터 3중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는 5월까지 미 국채 보유액을 두 달 만에 960억달러에서 150억달러로 급격히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는 미 국채를 파는 대신 또 다른 안전자산인 금을 사들였다.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국영방송 인터뷰에서 “달러화가 국제 결제에서 위험한 도구가 되고 있다”고 밝혀 미 국채 매각이 전략적 조치임을 분명히 했다. 미국과 최악의 관계로 대치 중인 터키도 미 국채를 8개월째 팔아치우며 보유액을 절반 이상 줄였다. 터키의 6월 말 미 국채 보유액은 288억달러로 2012년 이후 처음으로 주요 보유국 기준인 300억달러 밑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중국·러시아에 비해 경제규모나 부존자원이 적은 터키의 미 국채 축소는 오히려 부메랑이 돼 터키 경제를 옥죌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블룸버그는 총 15조달러의 미 국채시장에서 터키의 비중은 미미한 반면 한창 경제불안이 엄습하고 있는 터키의 미 국채 보유액 감소는 리라화 방어력과 달러 채무 상환능력을 놓고 위험만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미국의 압박을 받는 나라들이 사전조율이라도 한 것처럼 일제히 미 국채를 내다 팔며 맞불을 놓고 있다. 다만 반격과 보복조치를 노골화할 경우 미국의 공세 강화를 촉발할 우려가 있어 매각 지속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게 투자자들의 반응이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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