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인기 아이돌 멤버였던 쉰 살이 20대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올린 영상을 보며 ‘이게 인기있다고?’라고 되물었다. 그는 6개월 뒤 구독자가 80만명을 넘는 유튜브 채널의 주인공이 됐다. 구독자 10만 명 기념 인사를 한 지 불과 한 달 만이다. 진로 고민을 묻던 여고생에게 “진로? 소주 아닌가?”라 되묻지만 1020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god 멤버 출신 박준형(48)의 웹예능 ‘와썹맨(Wassup Man)’ 얘기다. 박준형은 이미 유튜브 최고 블루칩이 됐다.
요즘 유튜브에서 뜨고 있는 ‘웹예능’에 연예인들이 몰려들고 있다. 길어야 10분 안팎. 하지만 편당 100만뷰는 거뜬하다. ‘와썹맨’은 박준형이 전국 각지의 즐길거리를 찾아 체험하는 형식이 대부분이다. 가끔 혁오 등 게스트가 나오기도 한다. 여타 예능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웹예능 특유의 B급 정서와 박준형의 약간은 어눌한 한국어가 만나 시너지를 일으켰다. 여기에 JTBC 출신 제작진의 편집이 이를 절묘하게 버무렸다. 비속어, 간접광고(PPL) 모두 거침없다. 오히려 제작진이 나서서 ‘돈 주면 이 자리에 광고해 드려요’라고 자막을 넣기도 할 정도다. 최근 방영됐던 강원도 양양 ‘서핑’편에서는 박준형이 서핑 중 수중 카메라를 잃어버리자 제작진이 ‘카메라 값을 채워야 한다’며 박준형을 닦달했다. 박준형은 젖은 머리에 왁스를 바르며 ‘협찬 광고’를 선보였다.
김종민(39)도 웹예능의 강자다. 그 역시 ‘뇌피셜’에서 왁싱를 소재로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브라질리언 왁싱은 필요하다, 불필요하다?’와 같은 엉뚱한 주제로 1:1 토론을 진행하는가 하면 ‘펙트체크’를 하겠다며 네이버 검색을 하기도 하고, 유재석 등 지인에게 전화해 ‘왁싱을 할 생각이 있나’와 같은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뇌피셜’ 역시 유튜브 조회수 100만 뷰 안팎을 기록하는 등 순항하고 있다.
이러한 웹예능은 왕년의 아이돌들의 1인 진행에 실력파 제작진의 힘이 더해져 기존 웹예능과 뚜렷한 차별화를 보이고 있다. ‘뇌피셜’의 경우 다큐멘터리를 주로 제작·방영하던 미국 방송국 히스토리에서 제작했다. 2017년 미국 본사에서 한국 시장에 재진출하며 론칭한 프로그램 중 하나다. ‘런닝맨’ ‘범인은 바로 너’를 연출한 김주형 PD가 기획했고, ‘런닝맨’의 FD로 활약한 고동완 PD가 연출을 맡았다. 기존 다큐멘터리 채널의 토론 콘셉트를 차용하면서도 발랄한 주제로 1020 유튜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와썹맨’의 기원은 케이블 채널 JTBC2에서 만든 ‘사서고생’이다. 이 프로그램은 유명 연예인이 해외로 나가 물건을 팔아 여행경비를 마련하는 내용이다. ‘와썹맨’은 ‘사서고생’의 스핀오프 격. 제작진도 JTBC 산하 ‘룰루랄라 스튜디오’다. 하지만 이제 ‘와썹맨’이 ‘사서고생’보다 인기가 더 높다는 평이 대다수. 사실 ‘와썹맨’도 1·2화에서는 ‘사서고생’의 내용을 담았지만 반응이 크게 좋지만은 않았다. 4화에서 박준형이 “차라리 내게 카메라를 줘. 오늘부터 내가 찍을래”라고 선언하며 지금의 인기가 시작됐다.
기존 방송국에서도 1인 방송 제작자의 형식을 차용하려는 시도가 잦았다. MBC의 ‘마이 리틀 텔레비전’부터 tvN의 ‘신서유기’ 모두 인터넷방송을 모토로 제작했던 방송 프로그램이다. 이들 방송은 ‘관찰예능’이 득세하던 TV 채널에 신선함을 불어넣으며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수많은 1인 크리에이터가 진검승부를 펼치던 유튜브에서는 달랐다. 파괴력이 크지 못했다. 하지만 끼 있는 예능인 1인을 ‘프리롤’로 풀어놓고 방송국 출신 제작진이 편집으로 ‘서포트’를 맡자 상황이 달라졌다. 젊은 세대가 원하는 변화에 재빠르게 대응하면서 기존의 1인 크리에이터가 할 수 없던 ‘퀄리티’도 뽑아냈다.
그러나 1인 크리에이터가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은 잦은 욕설과 성적 비하 등으로 논란을 빚고 있다. 웹 예능 역시 마찬가지다. 간접광고 및 어느 정도의 비속어에 대해 공중파 TV에 비해 훨씬 관대하지만, 이 역시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와썹맨’ 24화 끝부분에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 부분이 포함돼 해당 부분을 삭제 조치했다’는 내용의 사과문이 담기기도 했다. 제작진이 바다를 찾은 한 여성을 성적으로 희화화했다는 논란이 제기되자 처했던 조치다. 이에 대해 일부 구독자는 댓글로 “피해자가 잘못된 편집으로 얼굴도 알려지고 성희롱까지 당했다”고 제작진을 규탄했다.
/우영탁기자 ta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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