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의 내홍이 심상치 않다. 설정 총무원장의 탄핵에도 갈등은 더욱 심화 되는 모양새다. 중앙종회를 비롯한 주류 측은 다음달 28일 현재의 선거 체제로 총무원장 선거를 진행하겠다고 확정했다. 현 선거제도는 입법부인 중앙종회와 각 24개 교구에서 선정한 10명으로 구성된 321명의 선거인단이 총무원장 선거를 진행한다고 규정했다. 이대로라면 주류에서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불교개혁행동 등 재야세력은 이에 격하게 반발하고 있다. 중앙종회를 해산하고 비대위 체재로 넘어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26일 조계사에서 열릴 재야 세력의 전국승려대회와 주류 측의 맞불 집회 격인 교권수호 결의대회를 하루 앞두고 양측의 물리적인 충돌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유사점 많은 1994·2018년의 조계종=지금으로부터 24년 전인 1994년, 조계종의 혼란은 극에 달해 있었다. 1980년 법난 이후 조계종은 정부와 협조하며 교단의 세를 확장했다. 그 중심에 있던 서의현 총무원장은 재선을 넘어 3선까지 바라봤다. 하지만 1월 27일에 처음 제기됐던 조계종 상무대 비리 의혹이 모든 것을 바꾸기 시작했다. 정대철 민주당 의원의 폭로로 밝혀진 상무대 비리 사건은 서의현 총무원장과 김영삼 정부 사이의 검은 거래를 수면 위로 드러내 철옹성 같던 서의현 총무원장 체제에 되돌릴 수 없는 균열을 만들었다. 청화·시현·도법 스님이 단식투쟁에 돌입했고, 범승가종단개혁추진회가 설립돼 서의현 총무원장 3선 저지를 결의한다.
2018년 5월 1일 ‘PD수첩’은 조계종 집행부의 도박·은처자·재정비리 의혹들을 제기한다. 조계종은 ‘PD수첩’에서 방영한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MBC를 고소하고 자체 개혁위를 꾸려 진상조사에 나선다. 하지만 세수 88세의 설조 스님이 단식투쟁에 나서고 불교개혁행동이 출범해 설정 총무원장 퇴진·자승 전 총무원장의 구속과 종단 개혁을 촉구하며 상황은 급변했다. 중앙종회는 설정 총무원장을 불신임하는 초강수로 개혁 세력을 달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불교개혁행동은 전국승려대회를 통해 조계종 개혁의 주도권을 잡겠다고 선언했고, 조계종은 이를 해종집회(害宗集會)로 규정한다.
◇3·29 법난 재현되나…물리적 충돌 가능성 우려=1994년 3월 29일은 대한민국 불교사상 최악의 날 중 하나로 기억된다. 서의현 총무원장이 250명의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조계사 앞에서 불교 개혁을 촉구하던 이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했기 때문이다. 서의현 총무원장은 이튿날인 3월 30일, 조계사를 원천봉쇄한 후 3선 선거를 진행해 총무원장에 당선된다. 하지만 종단의 최고 책임자가 조직폭력배를 동원한 일에 종단 내외 모든 이들이 경악했다. 이는 4월10일로 예정됐던 전국승려대회로 폭발했다. 수천 명이 조계사 앞에 모여 서의현 총무원장 축출을 결의했다. 4월 13일 원로회의는 승려대회 결의사항을 추인하며 서의현 총무원장 체제는 막을 내린다.
전국승려대회는 공식기구인 중앙종회나 원로회의와 달리 종헌종법에 규정돼 있지 않은 초법적 성격의 집회다. 조계종은 설정 총무원장 탄핵 직후 공식입장을 통해 승려대회에 참여하는 승려들의 신원을 파악하고 발언 내용을 채증해 강력한 징계를 내리겠다고 선언했다. 중앙종회는 9월 6일 중앙종회를 소집해 승려대회 대응을 위한 ‘해종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맞불집회도 예고됐다. 조계종 주류는 24개 교구의 스님들이 참석하는 교권수호결의대회를 전국승려대회보다 한 시간 일찍 열어 전국승려대회 참여 승려들의 출입을 막겠다는 입장이다. 이대로라면 조계종 앞마당을 차지하기 위한 공방전이 펼쳐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국회에서나 보던 광경이 대한민국 불교의 중심지인 조계사에서 펼쳐질 위기에 처했다.
/우영탁기자 ta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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