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도쿄 이야기>, 이타미 주조 감독의 <장례식>, 최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현재 모습과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다채로운 가족 에 대한 영화들 속에 불량스럽지만 사랑스러운 데뷔작 <불량가족, 행복의 맛>이 시선을 끌고 있다.
<불량가족, 행복의 맛>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상상 그 이상으로 다이나믹하고 기상천외한 가족모임, 장례식이다. 모두가 행복한 코스프레를 하는 결혼식과는 달리 가족 장례식은 감정폭발의 기폭제처럼 분노가 폭발하고 묻힌 감정들이 파헤쳐지고 온갖 비밀들이 튀어나오는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처음으로 모이게 된 ‘하루노’ 가족. 서로를 향한 감정 싸움이 절정에 이르는 부모 세대와는 달리, 이 모든 소동극을 지켜보는 자식 세대들은 냉소적인 생각과 그런 부모 세대에 대한 혐오를 가감없이 드러내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섹스를 하고 있었다는 생각으로 묘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요시코는 소동극의 한복판에서 때때로 구토를 느끼며, 죽음과 욕망 사이에서 인간적인 고뇌에 사로잡힌다.
“섹스가 미안하긴 처음이었다”는 다소 도발적이면서도 엉뚱한 카피는 영화의 주인공 요시코를 궁금하게 한다. 남자친구와 섹스를 하던 중 할아버지의 부고 전화를 받게 되고, 그 뒤부터 죄책감에 시달리며 구토감을 느끼게 되는 요시코. 자신의 행동뿐만 아니라, 실제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장례식과 홀로 남겨진 할머니에 대해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어른들의 태도에 더 큰 좌절과 혼란을 겪게 되지만, 영화 내내 요시코를 사로잡는 “인간은 개에게 잡아 먹힐만큼 자유롭다”는 후지와라 신야의 강렬한 문구와 삶과 죽음이 자연스레 혼재하는 인도에 대한 이야기는 그녀의 자유로움과 개척정신,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상징하기도 한다. 불필요한 화해도, 그 어떤 감정의 과잉도 없이 섹스와 죽음으로 시작된 요시코의 일련의 고민들은 자연스레 삶으로 이어져간다. 이 영화로 요코하마 영화제 신인배우상을 수상하기도 한 키시이 유키노는 다채롭고 유머러스하게 전개되는 미세한 감정의 변화들을 표현해내며 놀라운 재능을 선보인다.
실제 장례식에서 모든 사람들은 기계적으로 형식과 절차에 따라 움직이지만, 그 와중에 벌어지는 작은 소동이나 의외의 행동들을 보면서 죽음의 한복판에서 사람들이 더욱 인간다워진다는 걸 느꼈다는 감독은 남다른 시선과 통찰력을 시작으로, 20개가 넘는 버전의 시나리오를 작업해가며, 단순하면서도 많은 의미가 담긴 대사와 이야기를 각본가 야마자키 사호코와 함께 완성해냈다. 거기에 이마무라 케이스케 촬영감독은 사실적인 자연광을 사용하여 따듯하고 애정어린 시선으로 장례식 소동 속에 놓인 가족들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냈으며, 도시가 아닌 시골이었기에 가능했던 독특한 이미지들을 과감히 시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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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이지만 사랑스러운 그들의 장례식 소동극 <불량가족, 행복의 맛>은 9월, 관객들을 찾아간다.
/최주리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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