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과 곧바로 연결되는 서울지하철 7호선이 가로지르는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하지만 노후 단독·다가구가 밀집한데다 주변에 대규모 중국동포 거주지가 형성된 탓에 4~5년 전만 해도 부동산 시장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옛날 얘기’다. 신길동의 지도를 바꾼 것은 다름 아닌 ‘뉴타운’이다. 2015년 900여 가구의 첫 아파트가 입주한데 이어 지난해 4월에는 인근의 1,700여가구의 대단지가 들어섰다. 오는 2020년이면 주변 재개발아파트가 줄줄이 공사를 마칠 예정이어서 대규모 아파트촌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확 바뀐 주거지도에 집값도 치솟았다. 2013년 당시 5억3,000만원선에 분양됐던 A아파트 전용 84㎡의 현재 시세는 최고 10억원을 웃돈다.
그런데 신길동만이 아니다. 최근 집값 급등 과정에서 줄줄이 이른바 ‘10억 클럽(전용 84㎡ 기준)’에 들어선 비강남권 아파트의 면면을 살펴보자. 종로구 교남동, 서대문구 북아현동, 영등포구 신길동, 동작구 흑석동, 성동구 하왕십리, 동대문 전농동…. 눈에 띄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서울의 대표적인 ‘뉴타운’ 개발지역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 중인 2002년 △은평 △왕십리 △길음 등 3곳의 시범뉴타운을 시작으로 3차례에 걸쳐 25곳의 뉴타운을 무더기로 지정했다. 뉴타운 일대에 지정된 재개발·재건축 구역은 무려 683곳. 강남권 재건축에 국한됐던 개발 바람이 사실상 서울 전역으로 확대된 셈이다. 이 과정에서 무리한 사업 추진에 따른 주민 갈등 등 부작용도 잇따랐고 지난 2012년부터는 서울시의 본격적인 출구전략으로 지난해 말까지 전체의 절반이 넘는 365곳이 구역에서 해제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하지만 상당수 구역의 사업 중단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재개발은 서울 강북권 노후 주거지의 지도를 확 바꿔놓았다. 바뀐 주거지도는 해당 지역의 부동산 가치를 끌어올렸다. 쇠락하던 노후주거지가 개발을 통해 회춘했으니 집값이 치솟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서울 집값 급등의 진짜 요인은 단순한 ‘투기’가 아니라 16년 전부터 이어진 ‘개발압력’인 셈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개발은 여전히 ‘진행중’이라는 점이다. 여전히 서울 곳곳에서는 공사가 한창이거나 아직 첫 삽조차 뜨지 않은 채 대기 중인 재개발·재건축구역이 부지기수다. 그런데 최근의 분위기는 일선 지방자치단체들까지 나서 불붙은 집값에 기름을 붓는 형국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여의도·용산 개발 구상을 내놓은데 이어 최근 성남시까지 13만여 가구의 수도권 최대 신도시 분당 아파트 재건축을 위한 정비기본계획 수립에 나섰다고 한다.
이쯤 되니 정부도 답답할 노릇이다. 치솟는 집값을 잡겠다고 주택공시가격 현실화에 추가 투기억제책까지 내놓겠다고 나서지만, 과연 약발이 먹힐지 의문이다. ‘개발 호재’라는 수증기는 계속 유입되는데 ‘집값 상승’이라는 태풍의 힘을 떨어뜨릴 묘책이 없어서다. 이쯤 되면 ‘주택거래허가제’라도 도입해야 하는 것일까.
/건설부동산부문 선임기자 d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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