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남짓 직장생활을 하면서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이라는 말을 접한 것은 생각보다 최근의 일이다. 야근을 하다 못해 집까지 일을 들고 가 밤을 새우던 우리나라 직장문화가 이제 ‘일과 삶의 균형’을 생각하는 데까지 진전했다는 것은 참 반가운 일이다. 물론 아직도 모두 윈윈할 수 있는 합리적인 근로조건에 대해 노사가 함께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정부와 많은 기업이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등 근무시간 단축을 통해 노동자의 삶의 질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바야흐로 우리에게도 ‘저녁이 있는 삶’이 찾아왔다.
그런데 이렇게 늘어난 여가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 못지않게 단축된 노동시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중요한 것 같다.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야근도 습관이니 얼른 퇴근하라”던 필자의 직장동료의 말이 기억난다. 어차피 야근하겠다고 결심하게 되면 서둘러 끝낼 일도 좀 늑장을 부리게 되고 업무시간에 집중하지 않게 되는 것을 두고 한 말이었다. 아마 야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정신없이 일해도 야근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훨씬 더 많겠지만 필자의 경우를 돌이켜보면 그동안 피할 수 있는 야근도 꽤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워라밸이라는 말에는 그간 일하는 시간에 양보했던 여가를 되찾자는 보상의 의미가 더 짙게 배어 있다. 그러나 앞으로 좀 더 성숙한 워라밸을 즐기기 위해서는 여가뿐 아니라 직장에서 하는 일을 자기 스스로 치밀하게 조율하고 설계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직장인들에게는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업무 효율성이나 성과가 좌우된다. 워라밸이 의미하는 ‘균형’에 비춰본다면 업무시간에 보다 더 집중해 일하고 중요한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의 우선순위를 구분해 처리해야 한다. 또 불필요한 이석을 줄이는 등 업무시간의 질과 효율성을 높이는 노력으로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취미활동을 열심히 즐기며 빈틈없는 휴가 스케줄을 짜는 것도 중요한 또 하나의 축이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평균 노동시간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멕시코·코스타리카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예전부터 우리는 ‘부지런한 국민’이라는 찬사를 들었고 그로 인해 오늘의 경제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노동의 양보다 질적인 향상으로 균형 잡힌 삶을 실천할 때가 온 것 같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예전에 상당히 유행했던 광고 카피가 기억난다. 그때가 지난 2002년이었으니 떠나지 않고 일만 하거나 일은 게을리하고 떠나기만 하던 사람들을 향해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는 워라밸을 외치고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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