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순항하는 듯했던 한반도 정세가 다시 최대 고비에 맞닥뜨렸다. 미국에서 북한이 ‘역린’과 같이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한미 연합훈련 재개 가능성을 제기했고 한미관계에도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균열이 가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다음달 열릴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에 핵 리스트 신고 등 비핵화 조치를 요구해야 하며 또 남북 교류만 강조하면 국면이 급속하게 악화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선 28일(현지시간) 미국에서 대북 압박 발언이 동시다발로 나왔다. 가장 강력한 카드는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의 입을 통해 거론됐다. 그는 북미회담의 결과 유예된 한미훈련에 대해 “현재로서는 더는 중단할 계획이 없다”며 재개 가능성을 열었다. 한미는 북미회담에 따라 8월 열리는 을지프리덤가디언(UFG)·해병대연합훈련(KMEP) 등을 중단했다. 다음으로 돌아오는 대규모 훈련은 내년 3월 키리졸브·독수리훈련 등이다. 전문가들은 당장 한미훈련을 재개하겠다는 뜻이라기보다 대북 협상력을 높이려는 발언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군사훈련’ 카드를 꺼낸 것은 상당히 큰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헤더 나워트 미 국무부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외교적 노력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면서도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도 이것(비핵화)은 쉽지 않고 다소 긴 과정이 될 것이라고 출발부터 말해왔다”며 협상의 장기화 가능성을 열어놨다. 그동안 빠른 비핵화를 촉구했던 미국의 입장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 대사도 워싱턴DC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제재와 비핵화에 대한 생각과 태도를 바꾸지 않을 것”이라며 “협상이 느리고 험난한 과정이 될 것임을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하루에만 3번의 대북 압박 메시지가 나오자 청와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김의겸 대변인은 29일 정례브리핑에서 매티스 장관의 발언에 대해 “현재로서는 한미가 이 문제를 논의한 적이 없다”며 “북한의 비핵화 진전 상황을 봐가면서 한미 간에 협의하고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한미훈련 재개에 반발하는 북한과 가능성을 열어놓은 미국 사이에서 어느 편도 들지 않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은 것이다.
문제는 미국의 대북 압박 등 표면적인 것뿐만 아니라 수면 아래에서도 이상기류가 포착되는 점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9·9절 북한을 방문할 것으로 보이면서 한반도 문제가 미중 간의 대리전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그것도 단순히 정치·외교 분야를 넘어 무역·경제로 확전하며 우리가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
한미관계에 균열 징후가 깊어지는 것도 문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남북회담에 미국도 동의했느냐’는 질문에 “미국의 동의사항이라기보다는 판문점 선언의 후속 조치인 만큼 미국도 충분히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확실한 동의가 없었다는 의미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6월12일 이후 두 달 넘게 통화를 하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북관계 발전은 북미 진전의 부수적 효과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개성 남북 연락사무소 개소를 두고도 계속 한미 간에 입장 차가 노출되고 있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복수의 한국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문 대통령이 비핵화에 진전이 없으면 다음달 뉴욕 유엔총회에 참석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전하며 “문 대통령이 북미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지며 진퇴양난에 처했다”고 평가했다.
해법은 없을까.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미국은 핵리스트 제출을 요구했고 북한은 거부하면서 교착상태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며 “남북 정상회담에서 ‘비핵화는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내용이고 핵리스트 신고 정도는 북한이 해줘야 한다’고 적극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다시 남북 교류 메시지만 나오면 상황이 악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도 “어설픈 중재자 전략보다 비핵화의 기회를 놓치면 지난해와 같은 위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을 김정은 위원장에게 정확히 말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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