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21일 국회에 출석해 “국민들이 동의한다면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금보험료는 현재 소득의 9%이며 직장인은 절반을 회사에서 부담하고 있다.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는 17일 기금 고갈 시기가 오는 2060년에서 2057년으로 당겨지며 향후 70년 동안 기금 고갈을 막으려면 보험료를 우선 2~4.5%포인트 올릴 것을 제안했다. 보험료 인상의 불가피성에도 부담을 가장 오래 져야 하는 2030세대들은 줄곧 연금만 내다가 결국 수령은 못 할 것이라며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국민연금 폐지론’까지 등장했다. 인상 찬성 측은 빠르게 인구구조가 악화하는 상황에서 미래 세대 간 갈등을 줄이기 위해 보험료 인상을 더는 미룰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당장 기금재정이 위기에 처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험료 인상보다 성장·고용·분배의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국민연금 기금 소진 시점이 3년 앞당겨진다는 재정전망 결과가 발표되면서 논란이 뜨겁다. 저출산과 평균수명 연장 등 여건 악화가 기금 소진의 주된 원인임에도 국가 지급보장 등의 제도 외적인 논의가 주목받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공적연금 강화 차원에서 소득대체율을 5%포인트 인상했을 때가 아닌 예정대로 소득대체율을 40%로 조정할 경우 소진 시점이 오는 2057년이라는 점이다.
국민연금은 지난 1988년 70%의 소득대체율(근로기간 월급대비 받는 연금액의 비율)로 도입됐다. 두 차례의 개혁으로 현재 45%를 보장하고 있으며 매년 0.5%포인트씩 하락해 2028년 40%로 조정될 예정이다. 도입 당시 3%로 출발한 보험료는 1998년 이후 20년 동안 9%에 머물러 있다. 인구·사회 구조가 안정적이라는 전제하에서도 70%의 소득대체율 보장을 위해서는 28%, 45% 소득대체율은 18%, 40% 소득대체율에서는 16% 정도를 걷어야 안정적인 제도 운영이 가능하다. 우리와 유사하게 운영되는 대다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보험료가 18% 이상이니 그동안 낮은 보험료를 부담해왔음을 알 수 있다.
보험료 인상 필요성을 판단하기 위해 최근 발표된 재정추계 결과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저성장 추세의 고착화로 5년 전에 비해 최대 적립기금이 2,561조원(2043년)에서 1,778조원(2041년)으로 783조원이나 감소하고 있다. 인구구조 악화와 수급자 급증으로 1,902조원의 거대기금이 2041년부터 2057년까지 16년 만에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태산처럼 쌓였던 적립금도 20년을 버티지 못하는 형국이다. 연금제도의 설계가 튼튼해 638조원이 쌓인 것이 아니라 내는 사람은 많고 받는 사람의 수는 적어 나타난 착시 현상이다. 적립금 없이도 연금 지급을 위해 필요한 보험료를 의미하는 부과방식 비용률이 2020년 5.2%에 불과하나 2060년에는 26.8%, 2070년에는 29.7%에 달한다. 기금 소진 이후 부과방식으로의 전환이 당연하다는 주장을 무색하게 하는 수치다. 현세대는 보험료 9%도 많다고 하는 판에 제반 여건이 악화할 후세대는 월급의 30%가량을 국민연금 보험료 또는 세금으로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도 외적으로 인구구조와 고용률 개선을 통한 재정기반 확충 여지도 거의 없어 보인다. 출산장려 정책의 효과가 적고 초저출산(1.05) 추세도 상당 기간 유지되거나 하락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설령 출산율이 올라간다 해도 이미 악화한 인구구조는 몇십 년간 지속된다는 점도 공유해야 한다. 수십 년간 지속된 초저출산으로 미래 경제활동인구 약 800만명이 태어나지 못해서다.
많은 진통 끝에 4차 국민연금발전위원회에서 합의한 국민연금 재정목표(70년 추계기간인 2088년에 적립배율 1배 확보) 달성을 위한 필요 보험료를 인상 시점별로 비교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2020년 일시에 보험료를 인상한다면 16.02%로 가능하나 20년 지체하면 20.93%로 약 5%포인트 더 인상해야 한다. 일시 인상이 아니고 통상 10여년에 걸쳐 인상하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실제로 부담해야 할 보험료는 더 높아지게 된다.
흔히 두 달치 정도의 연금지출액을 보유한 독일의 사례를 들어 부과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독일의 사례를 들려면 독일이 우리와 다르게 연금제도를 운영한다는 점도 알려야 한다. 매년 국가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에서 연금지출을 자동으로 통제하고 있어서다. 국민과 정치인에게 묻지도 않고 재정적으로 지속 가능하도록 지출을 통제하는 연금재정 자동안정장치를 도입한 것이다. 이렇게 제도를 운영하다 보니 적립금이 많을 필요가 없다. 또 독일은 이미 1970년대부터 우리의 두 배 이상의 보험료를 부담해왔다. 오래전 저부담·고급여 문제를 해결하다 보니 경제성장률과 출산율·평균수명의 변화 추이를 반영하는 정도의 미세한 조정만으로도 제도 운영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우리와 많은 차이가 있다.
이쯤에서 2004년 독일 연금개혁의 산파 역할을 한 베르트 뤼루프의 말을 되짚어보자. 특정 세대가 지나치게 손해 보지 않도록 연금제도를 손보는 것이 재정적·정치적인 지속 가능성 확보의 지름길이라고 언급했다. 독일의 사례를 염두에 둘 경우 우리처럼 빠르게 인구구조가 악화하는 국가에서 세대 간 형평성을 확보하는 길은 빠른 보험료 인상이 될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지난 20년 동안 보험료를 단 1%포인트도 인상하지 못했으면서 우리 후세대는 두세 배 더 부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현세대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후세대의 대변자가 없는 연금 논쟁에서 미래 사회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보험료 인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박한 시대적 과제인 것 같다. 보험료를 인상했다는 명분 확보 차원에서의 ‘찔끔’ 인상이 아닌 후세대가 동의할 수 있는 만큼의 충분한 보험료 인상이 빠르게 취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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