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그래프 하나가 있어요. 흔히 우리가 ‘우상향’이라고 부르는 모습을 하고 있죠.
어떤 내용이냐고요? 30년 동안 서울의 아파트 가격 변화를 보여주는 그래프예요. 2015년 12월 말, 서울 내 아파트의 매매가격 지수를 기준으로 만들었죠. 이를 100으로 두고, 30년 전부터 지금까지 가격지수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그렸어요.
그래프를 보면 서울 아파트 가격은 꾸준히 상승해 왔다는 걸 알 수 있어요. 86년 20.3이었던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가 2018년 7월 115.9로 올랐거든요. 30여 년 동안 서울 아파트 가격은 5배 넘게 상승한 셈이죠.
그렇다고 30년 동안 서울 아파트 가격에 흔들림이 없었을까요? 그렇지 않아요. 자세히 보면, 크게 3차례의 가격 하락이 이뤄지죠.
과연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언제 크게 올랐고, 또 언제 떨어졌을까요? 가격이 오르고 내릴 때의 국내 경제·사회 상황은 어땠을까요?
◇폭등하던 집값 잡은 신도시 건설
1980년대 말 서울은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연달아 개최해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국제적인 스포츠 축제를 개최하는 만큼 서울에는 인프라 건설 등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이뤄졌죠. 그런데 막상 주택 공급은 부족했어요. 우리나라 전체 주택 수요가 매년 40만 가구 정도였는데, 연 평균 23만 가구밖에 공급되지 않았거든요.
결국 서울의 부동산 시장은 1987년부터 과열되기 시작해요. 전년도 -5.03%였던 아파트 가격 상승률이 4.74%로 돌아섰죠. 1988년부터 3년 동안은 말 그대로 하룻밤 지나면 가격이 오르는 상황이었어요. 1988년부터 1990년까지 서울 아파트 가격은 매년 18.47%, 18.82%, 37.62% 폭등했죠.
노태우 대통령이 200만 호 주택 건설을 공약한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1989년 한 해에만 집 문제로 14명이 자살했을 정도니 집값 안정을 위한 정책은 필수적이었죠.
수도권 1기 신도시(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가 건설된 게 이때였어요. 1988년부터 1992년까지 265만 가구의 주택이 공급됐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부동산 가격은 공급량이 증가하자 곧바로 안정됐어요.
1991년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4.50%로 돌아섰고, 1992년(-4.33%)과 1993년(-2.76%)까지도 가격 하락이 계속됐죠. 정부의 의지로 서울 아파트 가격을 잡았던 유일한 사례예요.
◇IMF 외환위기의 충격
노태우 정부에서 안정시켜 놓은 시장의 흐름은 1990년대 내내 이어져요. 뒤이어 등장한 김영삼 정부도 주택 공급을 확대하고 투기 억제책을 내놓으며 힘을 보탰죠.
1995년 도입한 부동산 실명제가 대표적이에요. 명의신탁을 제한해 부동산의 실소유자와 등기상 소유자가 다른 것을 막고, 취득세와 재산세 등 각종 탈세 문제도 해결하기 위함이었죠. 이때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1994년 1.21% △1995년 0.00% △1996년 4.20% △1997년 5.18%였어요.
잔잔하던 시장에 큰 바위가 떨어진 건 1997년 말이에요. IMF 외환위기가 찾아온 거죠. 대규모 실업자가 발생했고, 가계 소득이 감소하면서 주택 수요가 급감했어요.
결국 다음 해 서울 아파트 가격은 14.60% 하락했죠. ‘부동산 가격 급락은 없다’는 신화가 깨진 시점이 바로 이때에요.
◇‘내 집 마련’이 꿈이 돼버린 2000년대
외환위기의 충격은 오래가지 않았어요.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을 하는 것은 하늘에서 별을 따오는 것보다 어려워졌거든요. 10여 년 동안 서울 아파트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죠.
시작은 김대중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이었어요. 1988년 취임한 김 대통령은 외환위기 극복 차원에서 경기부양을 위해 대대적인 부동산 규제 완화에 나섰죠. 당시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는 ‘주택경기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고 한시적으로 분양권 전매를 허용했어요. 양도소득세도 면제였죠.
그럼에도 시장이 살아나지 않자 1999년 10월에는 주택건설촉진대책을 내놔요. 청약자격을 완화하고, 취득·등록세를 감면해주는 등 35차례의 주택 관련 특별조치를 시행했죠.
그 결과가 어땠는지는 그래프에서 잘 드러나요. 2000년 4.18% 상승한 서울 아파트 가격은 2001년에는 19.33%, 2002년에는 무려 30.79% 폭등했죠. 말 그대로 국민 모두가 부동산 투기에 목을 매는 시대였어요.
2003년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은 과열된 부동산시장을 잡는데 주력했어요. 투기를 억제하는 정책을 10여 차례이나 발표했죠. 분양권 전매 제한을 비롯해 투기과열지구·투기지구 확대, 보유세 강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종합부동산세 도입 모두 노무현 정부에서 발표한 정책이에요. 말 그대로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었죠.
하지만 시장은 정부 의도와 정반대의 방향으로 흘러갔어요. 무리한 규제가 도리어 시장의 공급요인을 사라지게 만들면서 가격 폭등을 이끌었죠.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뉴타운을 여기저기 건설하겠다고 나선 것도 집값을 끌어올린 요인이 됐죠.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시절(2003.3.25~2008.2.24) 서울 아파트 가격은 무려 56.6%나 상승했어요. 정부가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해 혼란을 가중시킨 대표적인 사례로 남게 됐죠.
◇나는 새 떨어뜨린 글로벌 금융위기
하늘 높이 치솟던 부동산 가격이 떨어진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였어요. 미국의 부동산 거품이 붕괴하면서 발생한 세계적인 규모의 경제 위기가 우리나라를 덮친 거죠.
이명박 정부는 발표한 부동산 관련 정책만 20건이 넘을 만큼 부동산 경기 부양을 위해 노력했어요. 수도권 인근의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각종 세금(양도세, 종부세 등)을 완화했죠.
하지만 시장은 정반대로 흘러갔어요. 정부의 당근책은 글로벌 경기 침체를 뛰어넘지 못했고, 부동산 수요가 줄었죠. 게다가 해제된 그린벨트 지역에 ‘반값 아파트’로 불리는 보금자리주택이 건설되면서 공급량은 늘었어요. 수요는 줄고 공급은 늘었으니 결과는 뻔했죠. 2010년부터 2013년까지 4년 동안 서울 아파트 가격은 0.44~4.48% 하락했어요.
◇가계부채 1,300조 시대
2013년 취임한 박근혜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빚내서 집사라’였어요. 금융위기 이후 경색됐던 주택매매를 활성화해서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목표가 있었죠.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세제·금융·재건축·주택제도 등 부동산 시장 전 분야의 규제가 풀려요. 주택담보대출의 걸림돌로 지적되던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한도를 각각 70%, 60%로 올린 것은 시장 활성화에 특효였죠.
그 결과 하락하던 서울 아파트 가격은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어요. 2014년 1.09%의 가격 상승을 시작으로 △2015년 5.56% △2016년 4.22%의 상승률을 기록했죠.
가격 상승을 이끈 것은 ‘빚’이에요. 박근혜 대통령 취임 직전인 2012년 말 963조 8,000억 원 수준이던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2016년 말 1,342조 5,000억 원으로 폭등했죠.
◇서울 아파트 가격의 미래는?
문재인 정부는 출범하면서부터 부동산 투기 세력을 잡겠다는 목표를 확실히 하고 있어요. 역대 가장 강력한 부동산 규제 종합 폭탄 세트라 불리는 8·2 부동산 대책을 포함해 약 1년 동안 6~7번의 규제 정책을 쏟아낸 이유죠.
효과는, 글쎄요. 지금까지의 모습만 보면 성공적이지 못해요. 지난해와 올해(1~7월) 서울 아파트 가격은 각각 5.28%, 5.62% 올랐거든요. 특히 이번 달 들어 용산·여의도 개발 호재로 가격은 더 요동치고 있죠.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이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이자 문재인 정부는 추가적인 부동산 규제책을 내놓을 예정이에요.
지난 30여 년 동안 규제로 서울 아파트 가격을 잡는데 성공한 정부는 없었어요. 서울 아파트 가격이 하락한 건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등 거시경제 침체기나 주택 공급을 늘렸을 때뿐이었죠. 중간중간 부침을 겪었지만 장기적으로는 꾸준히 서울 아파트 가격. 하지만 단기적인 급등 이후 외부 충격이 올 경우 거품이 꺼질 때도 있었지요. 과연, 앞으로 서울 아파트 값은 어떻게 변해갈까요?
/정순구 이종호기자 soon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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