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석 감독은 “‘살아남은 아이’는 이 세 사람이 서로 구하는 이야기이다”고 말했다.
지난 30일 개봉한 ‘살아남은 아이’(신동석 감독, 아토ATO 제작)는 아들이 죽고 대신 살아남은 아이와 만나 점점 가까워지며 상실감을 견디던 부부가 어느 날, 아들의 죽음에 관한 비밀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신동석 감독이 메가폰을 들었고 최무성, 김여진, 성유빈 등이 출연한다. 제 68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부문에서 공식 초청을 받은 데 이어 제20회 우디네극동영화제에서 화이트 멀베리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애도라는 감정을 어루만지는 영화를 해보고 싶었다”는 신 감독의 의도처럼, 영화는 애도와 용서, 그리고 작은 위로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신 감독은 20대 시절, 주변 지인들이 연달아 세상을 떠나는 일을 경험하고 ‘상실’과 ‘애도’란 화두를 늘 마음 속에 품고 있었다고 했다. 스스로 ‘애도의 과정’을 거쳤다고 생각했지만 감정의 혼돈은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그렇게 신감독의 마음 속을 휘감고 있던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글로 살아나기 시작했다. 가족 중 누군가를 잃으면서 벌어지는 내용을 담은 ‘살아남은 아이’는 결국 영화화 되기에 이르렀다.
“ 애도나 죽음을 다룬 소설이나 영화에서 스스로 위안을 얻었다. 그러면서도 나도 모르게 남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위로를 한답시고 상투적으로 이야기를 꺼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때부터 언젠가 이런 주제에 대해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쭉 가슴에 품고 있었던 것 같다. 다만 이런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 내 첫 작품이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아이를 잃은 상실의 아픔을 겪은 부모 성철(최무성)과 미숙(김여진)의 애도 방법의 차이가 인물의 감정선을 밀도 있게 따라가게 만든다. 부부 어느 한 명에 무게 중심이 쏠리지 않게, 각각의 관점에서 풀어나가는 이야기의 방향이 중요했다고 한다. 신 감독은 아버지 ‘성철’이 아들의 무덤을 꾸미며 상실감을 극복하는 사람이라면, 어머니 ‘미숙’은 고통 속에 머물고 있으면서 상실의 아픔을 ‘삶의 지속’으로 견뎌내는 사람으로 해석했다.
“함께 사는 부부 사이라 할지라도 애도의 방식과 언어가 서로 다르다. 그래서 더욱더 위로라는 게 어떤 건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진정한 ‘위로’가 무엇인지 마음으로 다가가고 싶었다. 그래서 글을 쓰면서도 부부의 감정들이 어느 한 쪽에 치우지지 않기 위해 신경 썼다. ”
“성철은 아들이 죽은 이후에 아들의 무덤을 꾸미는 사람이라고 할까. 아들의 무덤 옆에 비석도 놓아주고 나무도 심어주고 잔디도 깔아주면서 애도의 자세를 취한다.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의 상실감을 극복하는 사람이다. 기현을 도와주는 행동 역시 아들의 죽음을 기리기 위한 행동에 가깝다. 미숙은 오히려 아들을 잃었다는 고통 속에 머물고 있을 때, 즉 아들 은찬을 늘 마음 속에 둬야 삶이 지속가능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극 중 부부는 인테리어 가게를 운영하며 ‘도배’일을 한다. 성철은 소년 기현에게 생계를 위한 도배 기술을 가르친다. 낡은 벽지를 뜯은 자리에 새 벽지를 들뜨지 않게 바르는 성철의 행동은 상실감을 극복하는 하나의 메타포처럼 다가온다.
”인테리어 가게라고 하면 샷시, 도배, 장판 등 많은 일을 한다. 그중 유독 도배가 눈에 들어왔다. 실제로 도배 현장을 따라가서 봤다. 그 작업 자체가 성철의 입장에서는 낡고 금간 것을 뜯어내고, 새하얀 벽지로 바르면서 상실감을 극복해가는 과정으로 보일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성철의 감정의 흐름을 보여주는 과정에서,도배를 영화의 중심에 두고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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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석 감독이 영화 작업을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최무성, 김여진, 성유빈 세 배우의 캐스팅을 확정 지었을 때이다. 반대로 가장 슬펐을 때는 최무성 배우가 다른 스케줄로 인해 이번 작품을 함께 하지 못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이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스케줄이 잘 조절이 돼서 최무성 배우와 무사히 촬영을 할 수 있었다.
그는 “그 순간 정말 행복했다. 저에겐 연기 잘하는 배우가 너무 필요했고, 세 사람의 연기의 앙상블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제가 그리던 그림대로 꾸릴 수 있겠다. 이젠 나만 잘하면 되는구나란 생각이 ‘덜컥’ 들었다. 그 때가 제일 좋았다.”고 당시의 심경을 회상했다.
전혀 다른 쪽 일을 하다, 뒤늦게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6기로 재입학한 신동석 감독은, 대학 시절 마틴 스코시즈의 ‘택시 드라이버’(1976)로 인해 영화 쪽에 완전히 눈을 돌리게 됐다고 한다. 이후 두 편의 단편영화 ‘물결이 일다’(2005)와 ‘가희와 BH’(2006)를 만들고 이번 장편을 완성했다. 차기작은 살인범을 쫓는 여성 형사가 주인공인 범죄영화다.
“중고생 때에는 영화를 별 생각 없이 보던 아이였다. 그러다 대학생 시절 어느 날, 마틴 스코시즈의 ‘택시 드라이버’를 보고 특별한 느낌을 받았다. 영화가 이해는 안 가지만 자꾸만 그 영화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이해할 수 없는 인물에 대한 질문을 계속 품다보니, 영화란 것을 만들고 싶어졌다. 그렇게 영화 쪽 일을 하게 됐다. ”
신동석 감독은 ‘살아남은 아이’ 시나리오를 쓰면서 스스로 위안을 받았다고 했다. 시나리오 자체가 힘을 줬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번 영화가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를 전달하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힘주어 말한 대답은 “불가능해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가능의 지점이 열리기도 한다”였다.
“영화를 통해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하는 게 어려운 일다. 어쩔 때는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도 있는데, 그래도 호주머니에서 작은 돌멩이가 떨어져나가듯, 노력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부부와 기현, 이 세 사람이 서로 노력해서 서로를 구하고 있다. 그게 처음에는 불가능해보이지만, 어느 순간 가능의 지점이 열린다고 생각했다. 힘들지만, 같이 조금씩 노력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저희 영화가 그런 지점을 조금이나마 보여줄 수 있었으면 한다. ”
마지막으로 그는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저자 서경식)이란 책을 추천했다. 이 책과 ‘살아남은 아이’가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지만 감독이 느낀 울림은 영화 속에 천천히 살아 숨 쉬고 있다.
“ 아우슈비츠 생존자 쁘리모 레비의 이야기다. 홀로코스트에서 빠져 나온 뒤 폭력의 시대의 잔혹함을 알리는 일을 하셨다. 그렇게 외부적으로 보기엔 큰 고통 없이 ‘괜찮아 진듯한 삶’을 사시던 그분이 홀로코스트에서 나온 후 30년 만에 자살을 했다. ‘왜 그는 30년만에 자살을 했을까’ 궁금하지 않나. 그 궁금증을 가지고 서경식 교수가 쁘리모 레비의 발자취를 찾아 유럽을 기행하면서 쓴 책이다. ‘애도’와 ‘위로’에 대해 화두를 던지는 분이시라면, 한번 쯤 읽어보시면 좋을 듯 하다.”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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