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와 중국 선전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굴지의 첨단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집결한 ‘혁신의 메카’라는 점, 그리고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으로 악명 높은 ‘주거 지옥’이라는 점이다. 혁신 인재들과 천문학적인 글로벌 투자 자금을 이들 도시로 불러모은 IT 기업들은 이 지역의 명성만큼이나 집값도 함께 끌어올렸다.
문제는 급격하게 오른 주택 가격이 다음 세대 스타트업이 이곳에 둥지를 틀 여지를 막아버리고 있다는 점이다. 지속적인 혁신을 위해 새로운 ‘젊은 피’의 수혈이 절실한 실리콘밸리와 선전은 어느덧 ‘IT 기득권자들의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중심지인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 카운티 마운틴뷰에는 이질적인 두 가지 풍경이 펼쳐진다. 구글 본사를 비롯해 미국에서 가장 비싼 건물과 주택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한편으로 집이 없는 주민들이 노숙을 하는 캠핑카 등이 적지 않다. 폭등하는 실리콘밸리 집값은 적잖은 이곳 주민들을 차량 노숙자 신세로 내몰고 있다.
마운틴뷰에서 정원사로 일하고 있는 베니토 헤르난데스(33)는 자신이 살던 아파트 월세가 3,000달러(약 330만원)가 됐을 때 부인·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와 캠핑카에서 지내는 길거리 생활을 시작했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임대료를 더는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가족의 생활 터전이 된 캠핑카 임대료는 월 1,000달러인 반면 샌프란시스코 미션 디스트릭트의 70㎡ 아파트 임대료는 월 3,400달러(약 380만원) 수준이다. 노숙 차량들에 안전한 주차공간을 제공하는 ‘세이프 파킹 프로그램’의 캐시 로치 코디네이터는 “실리콘밸리 인근에서는 방 하나짜리 아파트의 월세가 1,000달러 아래로는 아예 구경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구글이나 애플 등 실리콘밸리 IT 기업들의 실적 호조 소식은 이들을 더욱 불안하게 한다. 실적이 좋아지면 이들 회사 직원들의 수입은 더 많아지고 이는 덩달아 주택 가격과 임대료를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미 부동산 업체 질로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으로 실리콘밸리 인근 새너제이시의 주택 중간값은 99만5,000달러(약 11억2,000만원)로 미국 전체에서 가장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집값이 비싼 것으로 악명이 높은 뉴욕(83만6,000달러), 로스앤젤레스(80만달러)보다도 높다. 새너제이의 주택 가격은 올해만 6,000달러(7%)가 올랐다. 주택 가격 상승에 따라 주택 임대료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7월 현재 주택 임대료 중간값은 월 3,500달러로 올 들어 6% 인상됐다. 막대한 주거비 부담으로 미 연방정부는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Bay Area)에서 4인 가족 기준 소득 11만7,400달러(약 1억3,000만원) 이하를 ‘저소득층’으로 분류한다.
그동안 미국의 혁신성장을 이끌어온 실리콘밸리의 주택난은 어느덧 혁신의 발목을 잡는 심각한 위협요인으로까지 작용하고 있다. 최근 실리콘밸리리더십그룹은 “집값 급등과 교통난으로 실리콘밸리가 IT 일자리 창출의 선두주자 지위를 위협받고 있다”는 경고를 제기했다. 이에 따르면 IT 기업의 실리콘밸리 집중으로 2010년부터 2016년까지 7년간 이 지역 내 일자리는 29%나 증가했지만 이들이 머물 주택공급은 겨우 4% 증가하는 데 그쳤다. 무엇보다 주택 가격의 급등은 구글이나 애플을 이을 새로운 스타트업의 성장도 가로막고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가진 것이라곤 아이디어뿐인 창업자가 터전으로 삼기에는 이곳이 너무 비싸고 피곤한 동네가 됐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리더십그룹 보고서는 집값 상승으로 도시 외곽에 주택이 늘어나면서 평균 통근시간은 지난 7년 새 18.9% 늘어 72분이 소요된다고 지적했다. 실리콘밸리리더십그룹의 칼 가디노 회장은 “지금의 주택·교통난이 지속한다면 얼마 안 있어 실리콘밸리 엑소더스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태평양 맞은편의 ‘혁신가의 도시’ 중국 광둥성 선전시도 집값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다. 선전의 주택 가격은 이미 중국의 정치·경제 수도인 베이징·상하이에 맞먹는다. 세계 국가·도시의 비교통계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 넘비오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소득 대비 주택 가격 비율은 초인플레이션을 겪는 베네수엘라의 카라카스를 제외하면 세계 1위가 홍콩이고 2·3위가 베이징·상하이이며 선전은 그 뒤를 이어 4위를 기록했다. 월급쟁이가 선전에서 집을 사려면 41년어치의 봉급을 꼬박 모아야 한다. 이는 서울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 현지 언론들은 이 지역 주택 임대료가 올해만 30%가 올랐다고 전하고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중국의 흔한 시골 중 한 곳이던 선전은 덩샤오핑 개방정책의 일환으로 1980년 ‘경제특구’로 지정되면서 상전벽해를 이뤄냈다. 이 도시에 둥지를 튼 화웨이와 텐센트· BYD·ZTE 등은 풍부한 노동력에 홍콩과 대만 등 화교자본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기업의 성장과 함께 인구가 집중되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이것이 이번에는 기업의 혁신경쟁력을 갉아먹는 악순환이 시작됐다. 세계 최대의 통신장비이자 선전의 터줏대감인 화웨이의 연구개발 부문 직원들은 최근 둥관시 숭산호 시류포촌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둥관시는 선전에서 50㎞ 떨어져 있는 내륙이다. 이미 포화상태인 선전에서 추가로 시설부지를 확보할 수 없는데다 급등하는 주택 가격에 직원들의 불만이 높아 회사를 일부 옮긴 것이다. DJI도 둥관시에 연구개발 및 판매센터를 옮겼으며 ZTE는 2016년부터 광둥성 허위안시로 공장을 옮기는 작업에 착수했다.
/최수문기자 chs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