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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익명





독일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는 익명을 “붓을 칼처럼 휘두르는 살인미수”라고 표현하며 극도의 혐오감을 드러냈다. 틀린 말은 아니다. 1936년 1월28일 당시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에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맥베스 부인’에 대한 익명의 평론이 실렸다. ‘노래 대신 비명 소리만 들렸다’는 비판 일색의 글이었다. 마치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는 양 포장을 했지만 실상은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이오시프 스탈린의 불만을 그대로 옮긴 것과 같다. 권력이 휘두른 익명의 칼부림에 쇼스타코비치는 한동안 죽음의 공포 속에 살아야 했다.

쇼펜하우어의 지적처럼 이름을 숨긴다고 모두 악질적이고 반사회적이라고 매도할 수는 없다. 정치 사회를 둘러싼 시대 환경이 익명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 근대 서양 철학의 길을 연 르네 데카르트의 1637년 저서 ‘방법 서설’은 인간과 이성을 재발견한 책이다. 당시는 교회가 1,000년 넘게 유럽을 지배하던 시기였다. 신 아닌 인간을 강조하는 것은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불경이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조차 교회의 압력에 신념을 꺾어야 하는 시기였다. 책을 출간하려면 조국인 프랑스를 떠나 다른 나라에서 그것도 자신의 이름을 감춰야 했다. 익명은 데카르트가 교회라는 절대 권력에 맞서 할 수 있었던 최대한의 저항이었다.



언론이 통제된 환경에서 익명은 권력에 대항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언론인 겸 교수였던 리영희씨는 ‘익명의 특파원’이었기에 1959년 워싱턴포스트에 이승만 정부의 부정부패를 고발할 수 있었고 여성이 천대받던 시절 영국 여류 작가 샬럿 브론테가 ‘제인 에어’를 출간할 수 있었던 것은 남성 이름을 필명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프랭크 스코필드(한국명 석호필) 박사가 3·1 만세운동의 실상과 중요성을 영자 주간지 ‘서울프레스’에 실을 수 있었던 것 역시 ‘익명의 독자로부터 온 편지’였기에 가능했다.

뉴욕타임스(NYT)에 실린 익명의 기고가 미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자신을 ‘미국 행정부 내 레지스탕스의 일원’이라고 밝힌 기고자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많은 관료들이 대통령을 좌절시키기 위해 노력한다’고 주장했기 때문. 트럼프 행정부가 의문의 인물을 찾기 위해 ‘광적인 색출작업’을 벌인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익명의 기고를 둘러싼 논란의 결론이 쇼펜하우어의 ‘살인 미수’일지 데카르트의 ‘저항’일지 자못 궁금하다./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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