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造船)의 역사에 두 가지 새로운 기록이 14일 탄생했다. 하나는 최단시간 독자 설계. 독일 HDW사가 대한민국 해군용 209급 1번 잠수함인 장보고함을 진수한 지난 1991년 9월로부터 27년 만에 한국은 독자 설계한 3,000톤급 잠수함 ‘도산안창호함’을 진수했다. 이토록 짧은 기간에 설계·생산기술을 모두 습득하고 수출까지 성사시킨 사례가 없다. 두 번째는 전 세계를 통틀어 잠수함 건조 기간과 예산이 늘어나지 않고 계획대로 진행된 유일한 사례라는 점이다. 하지만 과제가 남았다. 순항을 지속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짧은 기간 동안 온 힘을 짜내 달려온 만큼 실수가 드러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세계 최대급 디젤 잠수함=안창호함은 덩치를 따질 때 세계 각국이 운용 중인 잠수함 544척 중 143위권 밖이다. 그래도 원자력 추진 잠수함을 제외하면 최대급이다. 안창호함은 통칭 3,000톤급으로 분류되나 정확한 수상배수량은 3,320톤. 세계 최대 디젤 잠수함이라는 일본 소류급의 수상배수량은 2,900톤이지만 수중배수량은 4,200톤에 이른다. 소류급의 길이는 84m, 안창호함은 83.3m로 미세하게 짧다. 폭은 9.6m로 소류급(9.1m)보다 오히려 넓다. 전체 용적은 안창호함이 넓을 수도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세계 최대라고 확정할 수는 없어도 최대급은 분명하다.
◇세계 유일의 수직발사관 탑재 디젤 잠수함=안창호함은 특이한 잠수함이다. 구소련의 전략잠수함 개발 초기와 딱 한 척만 건조된 북한의 신포급을 제외하면 현역 디젤 잠수함 중에서는 안창호급이 유일하게 수직발사관(VLS)을 심었다. 핵미사일로 무장한 이스라엘형 확대판 209급인 돌핀급 잠수함도 발사는 직경을 키운 어뢰발사관을 통해 이뤄진다. 인도가 80억달러를 들여 6척을 건조하려는 75I급에 수직발사대가 장착될 예정이지만 아직은 어느 나라에서 건조기술을 도입할지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안창호함에 수직발사관 0개가 장착됐다는 사실은 전략무기로 활용될 것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더욱이 순항미사일과 탄도미사일을 혼합 탑재해 북한뿐 아니라 주변국에 대한 억지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수직발사관의 직경은 어뢰발사관의 두 배 정도여서 북한 신포급처럼 장거리 탄도미사일은 탑재가 불가능해 보인다. 외관상 크기에 미뤄 1개 수직발사관에 순항미사일 2~4기나 현무 2급 탄도미사일 1기를 탑재할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 강력해질 후속함=안창호함 진수로 시작된 장보고Ⅲ 잠수함의 건조계획은 모두 9척. 안창호함과 동급인 장보고Ⅲ 배치(Batch)Ⅰ 사업은 오는 2023년까지 3척 건조로 끝난다. 2016년부터 연구가 시작돼 2028년까지 3척이 건조될 장보고Ⅲ 배치Ⅱ에서는 수직발사관이 00개로 늘어난다. 리튬이온전지를 장착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잠항시간이 늘고 순간적인 가속도 역시 뛰어나다. 교체 및 정비 주기도 7년에서 14년으로 늘어난다. 단점도 있다. 스마트폰 전지처럼 폭발 위험성도 없지 않고 비싸다. 세계 각국이 실제 운용을 주저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일본은 소류급 5번함부터 장착하겠다는 계획을 9번함으로 미뤘다가 다시금 11번함으로 연기한 상태다. 다만 가능성은 밝은 편이다. 한국산 리튬전지의 기술과 품질·가격경쟁력이 세계적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살아 있는 원잠 건조 가능성=장보고Ⅲ 배치Ⅱ는 사업 방향이 정해지고 윤곽도 뚜렷하게 잡혔으나 다음 단계인 장보고Ⅲ 배치Ⅲ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당연하다. 원자력 추진 잠수함 건조를 의중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분위기가 진전돼도 원잠은 필요하다는 인식이 정치권에서도 나오고 있다. 배치Ⅱ의 크기를 이미 디젤동력으로는 세계최대급인 배치Ⅰ보다 600톤(기준배수량)가량 키운다는 점 역시 배치Ⅲ부터는 원자로를 탑재할 수도 있다는 복안으로 읽힌다.
◇소형 잠수함에서 무장까지 국산화 라인업=보이지 않는 성과도 있다. 한국이 소형 잠수함에서 3,000톤급 이상 중대형 잠수함까지 독자적으로 설계·제작·수출할 수 있는 국가 반열에 들어섰다는 점이다. 특히 무장도 국산화를 이뤘다. 경어뢰에서 중어뢰, 대형 어뢰, 유선유도와 무선유도 어뢰, 잠대함 미사일과 잠대지 순항 및 전술 탄도미사일, 수직발사 시스템을 두루 생산하는 나라는 3개국 정도다. 서방 진영에서는 한국이 유일하다. 한국이 잠수함과 관련된 다양한 선택을 제공할 수 있는 국가로 부상하면서 견제도 심해졌다. 한국의 3,000톤급 잠수함 사업을 ‘깡통 프로젝트’라고 혹평하던 독일은 한국제 잠수함의 인도네시아 수출 이후 엄격한 기술통제에 들어갔다.
◇최대 난제, 초도함의 신뢰성 확보=지금까지 잘 왔고 미래도 밝은 편이지만 이제부터 난관이 예상된다. 검증이 기다리고 있다. 설계와 건조 과정에서 어느 때보다도 많은 실험을 진행해왔지만 ‘초도함’이 겪어야 할 혹독한 검증은 이제부터다. 테스트 과정에서 결함이 안 나오면 좋겠지만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잠수함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밀기술이 덜 들어가는 수상함도 초도함에서는 문제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함정 국산화의 이정표였던 울산급 호위함도 초도함(1980년 진수)은 아예 균형이 맞지 않아 함정 하부에 시멘트를 붓고서야 균형이 잡혔다. 미사일 고속함인 윤영하급은 고속항해 때 지그재그로 기동해 해군이 인수를 잠정 거부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그래도 검증 과정에서 치명적 결함이 아니라면 문제가 드러나는 게 오히려 바람직하다. 윤영하급의 갈지자(之) 기동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40노트였던 최고속력이 45노트로 높아지는 뜻밖의 성과를 거둔 적도 있다.
특히 호주가 겪었던 콜린스급 잠수함 개발 사업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대상이다. 호주는 스웨덴 기술을 기반으로 3,100톤급 콜린스급 잠수함 6척을 1993년부터 2001년까지 건조했으나 초도함이 나온 직후부터 온갖 악평에 시달렸다. 소음이 심해 ‘바다의 록밴드’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결국 호주 정부는 새로운 잠수함 도입을 위해 일본·프랑스 등과 접촉하고 있다. 60억달러 이상이 투입된 콜린스급 잠수함 도입 사업이 ‘초도함의 덫’에 빠져 사실상 좌초된 셈이다.
콜린스급은 분명 문제가 있었지만 언론과 정부의 대립으로 일이 꼬여버린 사례로 꼽힌다. 먼저 경쟁에서 탈락한 외국 업체들에서 콜린스급에 대한 혹평 정보가 언론사에 쏟아져 들어왔다. 확인을 요구하는 기자들에게 정부는 ‘초도함이란 으레 그런 것’이라는 식으로 안이하거나 거짓으로 대응해 일을 키웠다. 언론의 경쟁적 보도로 이어지는 악순환 끝에 호주 정부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나쁜 소식이 나올 때마다 그대로 밝혔다. 결국 사업은 불신의 벽에 막혀 실패하고 말았다. 콜린스급 사업은 우리의 장보고Ⅲ 사업 구조와 닮은 게 많다. 한국은 성능이 입증됐다는 214급을 독일 기술진의 지도로 건조하고도 초기에 문제를 잡지 못했던 적도 있다. 잠수함 개발과 건조가 그만큼 어렵다. 콜린스급의 전철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정부와 언론의 협조와 상호 이해, 문제 발생 시 대응 매뉴얼 개발과 비상대응예산 선확보 등이 과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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