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4개짜리 주택을 매입하면 4,000만원어치의 여행 패키지가 덤으로 주어진다. 당장 목돈이 없다면 보증금의 10%만 내고 입주한 뒤 이자와 관리비만 내고 살 수 있다.
‘미친 집값’의 원조 격인 홍콩에서는 최근 이 같은 일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지난 6월 치솟는 주택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정부가 빈 아파트에 세금을 매기는 ‘빈집세’ 도입 방침을 밝히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개발업자들이 각종 인센티브를 제시하면서 빈 아파트 물량을 서둘러 털어내고 있는 것이다. 홍콩 정부는 부동산개발업자 중 일부가 미분양을 핑계로 신축 아파트를 일부러 비워놓고 가격이 더 오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파는 행위를 막기 위해 내년부터 1년 이상 팔리지 않는 빈집에는 임대료의 2배에 달하는 금액을 세금으로 부과할 계획이다. 시장에서는 빈집세 도입을 계기로 지난 15년간 고공행진을 해온 홍콩 주택 가격에 마침내 제동이 걸리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초저금리 기조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세계 주요 도시의 부동산 가격은 미친 듯이 뛰었다. 대출규제 완화와 경기회복에 따른 수요 증가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공격적으로 단행된 미국 등 주요국의 이례적인 양적 완화(통화) 정책으로 자금 유동성이 풍부해지면서 부동산 등 자산시장으로 대거 유입됨에 따라 글로벌 부동산 가격 상승률이 어느덧 세계 경제성장률을 앞지르기에 이르렀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4·4분기 ‘글로벌 실질 주택가격지수’는 160.1로 금융위기 직전에 찍은 고점을 추월하며 집계가 시작된 2000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쉴 새 없이 이어지던 부동산 가격의 상승 흐름이 최근 들어 일부 지역에서 주춤하기 시작했다. 미국을 필두로 초저금리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는데다 부동산 가격이 과열 조짐을 보이며 ‘거품’ 논란이 불거지면서 각국 정부가 대출과 세금규제를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전 세계 22개 주요 도시의 주택 가격 상승률은 지난해 6.2%에서 올해 4.2%로 둔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드니·멜버른 등 소득 대비 주택 가격이 전 세계 최상위 수준인 도시들이 포진한 호주에서는 정부가 대출규제를 강화해 수요자들의 자금줄을 조이면서 11개월 연속 주택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 원리금을 내지 않고 이자만 내는 거치식 주택담보대출 제한에 힘입어 지난달 시드니의 주택 평균 가격은 전년 대비 5.6% 하락했다.
영국 정부는 ‘인지세’로 집값 하락을 유도하고 있다. 인지세는 주택 구입자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동산 구입 의욕을 꺾어 부동산시장을 냉각시키는 데 주로 활용된다. 영국 정부는 2016년 투기용 부동산과 두 채 이상의 보유 주택에 붙는 인지세율을 3% 올렸다.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2009년 말에서 지난해까지 연평균 7.5%씩 상승하던 평균 집값이 지난달 전년 대비 0.5% 하락했다. 싱가포르 역시 지난해 초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위해 인지세와 총대출액제한(TDSR)을 일부 조정한 데 이어 7월 인지세 인상을 주요 내용으로 한 부동산 규제 대책을 발표했다. 2주택자에게 부과되는 인지세를 7%에서 12%로 올리고 3주택자에게 부과되는 인지세는 10%에서 15%로 올리는 안을 담고 있다.
스웨덴의 집값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주춤하기 시작해 지난 2·4분기 평균 1.86% 하락했다. 지난 6년에 걸쳐 44%나 뛰던 집값이 진정세를 보이는 것은 정부가 지난해 11월 고액 대출자에게 상환능력을 입증하는 추가 절차를 도입하고 거치형 주담대를 줄여 대부분 분할 상환하도록 바꾼 규제가 효과를 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지난 2년 동안 오래된 아파트를 대대적으로 개보수해 신규 주택공급을 늘린 것도 한몫했다.
이 밖에 뉴질랜드와 캐나다는 외국의 투기자본을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보고 외국인 주택매매를 금지해 집값 잡기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외국인 주택매매 금지 법안을 통과시킨 뉴질랜드에서는 이 기간 집값이 전년 대비 0.1% 하락했다.
다만 각국 정부의 이 같은 규제가 장기적으로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현재 집값을 끌어올리는 주된 계층은 투자 여력이 있고 현금보유량이 많은 부유층이나 이득을 노리는 기관투자가라서 이들의 구매 결정에 각종 규제가 지속적으로 큰 영향을 주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영국 시사잡지 더위크는 “집값이 떨어진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런던 내 살 만하다 싶은 변변한 집 한 채 가격은 여전히 40만파운드(5억8,600만원)”라며 “생애 첫 주택 구매자에게는 (다른 누군가의) 어떠한 경제적 원조 없이 집을 구하기가 여전히 힘들다”고 꼬집었다.
장기간 상승가도를 달렸던 집값이 하락세로 돌아설 경우 파생될 부작용도 살펴봐야 할 대목이다. 영국 옥스퍼드대 산하 연구기관인 옥스퍼드이코노믹스는 최근 호주와 홍콩·캐나다·스웨덴의 주택시장이 불안하다고 경고했다. 애덤 슬레이터 이코노미스트는 “부동산시장이 장기 상승세를 이어오면서 부채 수준이 높아졌다”며 “변동모기지(주택담보대출) 비중이 크다는 점은 이들 4개국 시장의 불안한 요소”라고 지적했다. 옥스퍼드이코노믹스는 경제 규모가 큰 대다수 국가의 시장에서는 리스크가 크지 않았으나 경제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일부 선진국 시장에 리스크가 집중된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김민정기자 je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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