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건 상태가 부실한 사업장에 대해 시정지시 없이 즉각 형사처벌하도록 정부가 지침을 바꾼 뒤 연평균 3,000건 수준이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법처리 건수가 단숨에 1만건으로 3배나 뛴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과 법원도 산안법 위반 사범에 대한 엄벌 기조를 강화하면서 불기소는 줄고 유죄 판결이 늘었다. 이런 가운데 기업들은 사업주의 책임·부담을 일방적으로 강화한 산안법 전부 개정안이 통과하면 반강제로 범법자가 되는 것 아니냐고 염려하는 처지다.
16일 학계 등을 통해 서울경제신문이 입수한 ‘2007~2016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범 처리현황’을 보면 지난 2007년부터 연평균 2,900건을 유지하던 기소 규모가 2012년 9,089건으로 급증했다. 2016년에는 1만514건에 달했다. 이는 고용부가 산안법 위반으로 고발한 사건 중 검찰이 정식 재판에 넘기거나 벌금형을 내려달라고 약식기소한 사례를 합한 것이다. 반면 불기소 사건 수는 2012년을 제외하면 10년간 매년 1,000건대에 그쳐 검찰의 불기소 비율이 점점 낮아지는 모양새다.
고용부와 검찰이 산안법 위반 사례에 엄벌 의지를 다지면서 법원의 유죄 선고도 늘었다. 1심 기준 산안법 위반 사업주의 유죄 판결은 2012년까지 연간 200~300건대에 머물렀지만 이후 400~600건대로 증가했다. 처벌은 유예되지만 유죄로 인정된 집행유예 사례는 2007년 28건에서 2016년 109건으로 늘었다. 벌금 등 재산형도 같은 기간 205건에서 463건으로 뛰었다. 고용부 관계자는 “산안법 위반 사범에 대한 기소가 급증해 법원의 유죄 판결도 당연히 증가했지만 검찰과 법원이 전보다 엄벌주의 경향을 보이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산안법 위반 사범이 급증한 이유는 법을 어긴 사업주가 늘어서가 아니다. 고용부가 2012년 2월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을 고쳐 법 위반 사업주를 즉각 처벌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사법처리에 앞서 시정지시를 내려 사업장 안전·보건 상태를 개선할 기회를 줬다. 이 같은 엄벌 기조의 일환으로 고용부는 산안법 위반 사범 현황과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사례에 대한 법리 연구용역을 지난달 발주했다. 무죄 판례를 철저히 분석해 기업들이 빠져나갈 틈을 원천봉쇄하겠다는 포석이다. 올해 2월에는 고용부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의 작업환경 정보를 공개하라고 요구해 ‘영업비밀 침해’라는 반발을 사기도 했다. 다만 이와 관련 고용부 관계자는 “이번 연구 용역은 일방적으로 기업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려는 목적이 아니며 산안법 위반 사건들을 면밀히 분석해 기업이든 근로자든 억울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고용 당국과 사법부의 옥죄기가 심화하는 가운데 사업주 책임을 현저히 키운 산안법 전면 개정이 추진되면서 기업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22년까지 산업재해 사망사고를 절반으로 줄인다”며 산안법 전부 개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28년 만의 전면 수정이다. 이번 개정안은 근로자 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를 보다 엄하게 처벌하고 유해작업의 하청을 금지하도록 했다.
임우택 한국경영자총협회 안전보건본부장은 “개정안은 사업주의 책임과 처벌만 강조하고 계약 체결의 자유마저 제약한다”며 “지나친 규제는 기업이 범법자가 되는 것을 감수하게 만들어 오히려 산안법이 약화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