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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비틀’의 퇴장

1933년 1월 독일 총리 자리에 오른 아돌프 히틀러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다지기 위한 경제 부흥에 매달렸다. 이때 히틀러가 주목한 것이 자동차산업이다. 그는 국민 누구나 부담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소형차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듬해 히틀러는 자동차 업체 포르쉐의 창립자인 페르디난트 포르쉐에게 네 가지 조건을 제시하며 국민차 생산을 의뢰했다. 그 조건은 △어른 2명과 어린이 3명을 태울 수 있을 정도로 넓을 것 △시속 100㎞를 달릴 수 있을 것 △독일의 혹독한 겨울 환경을 견딜 수 있을 것 △가격이 1,000마르크 정도로 저렴할 것 등이다. 당시 이 가격은 오토바이나 만들 수 있을 정도여서 개발이 어려울 것으로 보였으나 포르쉐는 체코의 타트라에서 생산하는 차량을 참고해 국민차를 만들어냈다. 딱정벌레 모양을 가진 ‘비틀(Beetle)’이 탄생한 순간이다.

1938년 독일 볼프스부르크 공장에서 첫 양산 모델이 등장하자 히틀러는 ‘카데프 바겐(KdF Wage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는 나치즘을 홍보하는 데 앞장섰던 KdF라는 국영 여가단체의 명칭에서 따온 것이다. 히틀러는 국민차에 흡족한 나머지 행사 때마다 등장시키는가 하면 각계 인사들에게도 선물했다고 한다. 포르쉐는 히틀러가 붙여준 이름이 마뜩잖았던지 국민차를 뜻하는 ‘폭스바겐(Volkswagen)’으로 불리기를 희망했다고 한다. 비틀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1960년대 미국으로 수출되면서부터다. 미국인들은 차의 외관이 딱정벌레와 비슷하다는 점을 감안해 비틀이라고 불렀다. 이후 비틀은 미국 히피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으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1세대 모델의 비틀은 2003년 7월 단종되기까지 무려 2,153만대의 판매 기록을 세웠다. 이후 2세대 ‘뉴비틀’과 3세대 ‘더비틀’로 명맥이 이어져왔다.

1938년 첫선을 보인 이후 소비자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았던 비틀이 내년 7월 단종된다는 소식이다. 외신에 따르면 폭스바겐 미주본부는 “내년 7월 멕시코 푸에블라공장에서 생산되는 모델이 마지막 비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디젤게이트에 따른 재정난에 결국 발목이 잡혔다. 독특한 디자인 덕분에 별다른 사양 변경을 하지 않고도 무려 80년간 인기를 끌었던 비틀이 배기가스 문제 때문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니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는 점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오철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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