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 원주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던 40대 A 씨는 최근 사업을 접고 지난 8월 서울에 전셋집을 계약했다. 새로운 일도 시작하고 자녀 교육을 위해 노원구 상계동 주공아파트 전용 41㎡를 1억 7,000만 원에 구했다. 오는 11월에 잔금을 치르려면 전세자금대출이 필수적이었다. 원주에 두 채의 집이 있지만 융자가 있는 데다 이미 세입자도 살고 있어 추가 자금이 필요했다. 하지만 9·13대책 발표 후 A 씨는 다주택자로 분류돼 공적 전세보증을 받지 못할 처지다. 어쩔 수 없이 전세 계약은 취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집주인은 자신은 과실이 없다며 계약금을 돌려 줄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9·13대책’ 발표 이후 A 씨와 같이 전세대출이 막혀 계약을 해지하려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갑작스런 대출 규제에 이 같은 상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18일 중개 업계에 따르면 일선 은행과 중개업소에 아직 전세대출을 받지 못한 전세 계약자의 항의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계획했던 대출이 막힌 임차인들은 청와대에 국민청원을 제기하고 탄원서까지 준비 중이다. 전세대출 보증과 관련해 정부의 세부지침 전달이 늦어지면서 임대인과 임차인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특히 공적 전세보증 비중이 큰 4억 원 이하 전세 주택 밀집 지역이 심각하다. 노원구 상계동의 B 공인 대표는 “현재 5건의 전세계약이 전세대출금이 안 나와 계약 해지를 진행 중”이라며 “임차인은 계약금을 돌려 달라지만 집주인이 당연히 거부하면서 민사소송으로 해결해야 하나 싶을 정도다”고 말했다. 상계동 H공인 대표도 “새벽부터 전화가 와서 계약금 받아달라, 중개사 과실이 있는 것 아니냐고 따지니 영업을 못 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어 “집주인은 나가는 세입자에 전세금도 줘야 하는데 전세대출이 막혀 연쇄적으로 문제가 확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지역에서도 이 같은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광명시 소하동의 J공인 대표는 “전세 계약서를 이미 썼는데 대출은 받지 않은 거래가 3~4건 정도 있다”면서 “이번 달 계약 후 11~12월에 잔금 치르는 임차인은 아직 상황을 인지하지도 못해 직접 안내를 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집주인은 당연히 계약금 안 준다고 하겠지만 정부 정책이라 어쩔 수 없다고 사정해봐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국공인중개협회 관계자는 전세 계약 해지에 대해 “정부의 정책 변화 때문이지 임차인의 과실이라고 보긴 어렵기 때문에 정당한 계약 해지 사유가 될 수 있다”며 “일반적으로 잔금일 한 달 전에 대출을 신청하는데 이렇게 갑자기 규제될지 수요자는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일부 10%의 투기 세력을 막기 위해 나머지 90%의 실수요자가 피해를 봐선 안 된다”면서 “정책 발표 후 혼란스러우니까 자주 조건을 변경할 게 아니라 완전한 보완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재명기자 nowl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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