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8일 환영 만찬에서 “항구적 평화를 위해 큰 그림을 그려가겠다”며 “완전히 새로운 결의인 만큼 도전과 난관을 만날 수 있지만 역지사지의 자세로 이해하면 넘지 못할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우리 스스로 주인이 되는 새로운 시대는 흔들림을 모르고 더욱 힘 있게 전진하게 될 것”이라며 미국 등의 간섭 없는 자주성을 강조했다.
이에 앞서 양 정상은 김 위원장 집무실인 노동당 본부 청사에서 첫 회담을 진행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평양시내 노동당 본부 청사 2층 회담장에서 김 위원장과 오후3시45분부터 5시45분까지 2시간가량 회담을 나눴다. 회담 시간은 애초 예정(1시간30분)된 시간보다 30분 연장됐다. 우리 측에서는 서훈 국정원장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북한 측에서는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배석했다.
두 정상은 비핵화 협상 진전과 관련된 공을 서로에게 넘기며 덕담을 주고받는 등 첫날 회담 분위기는 시종 화기애애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비핵화 협상의 열쇠를 쥐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대화 재개를 문 대통령의 공으로 돌리며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전망을 밝게 했다. 김 위원장은 회담 모두발언에서 “북남관계뿐 아니라 문 대통령께서, 다 아시다시피 역사적인 조미 대화, 조미 수뇌 상봉의 불씨를 찾아내고 잘 키워주셨다”며 “앞으로 조미 사이에도 계속 진전된 결과가 나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문 대통령께서 기울인 노력에 다시 한 번 사의를 표한다”고 문 대통령을 치켜세웠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문 대통령이 최근 북미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강화되는 와중에 위험을 무릅쓰고 남북연락사무소 개설 등 남북관계 진전과 협력에 안간힘을 쓴 것에 대한 고마움을 밝힌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문 대통령도 모두발언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하는 김 위원장의 결단에 사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이어 “다섯 달 만에 세 번 만났는데 돌이켜보면 평창동계올림픽, 그 이전에 김 위원장의 신년사가 있었고 그 신년사에는 김 위원장의 대담한 결정이 있었다”며 “우리가 지고 있고 져야 할 무게를 절감하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8,000만 겨레에게 한가위 선물로 풍성한 결과를 남기는 회담이 되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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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담에 앞서 노동당 본부를 찾은 문 대통령은 이곳에서 대기 중이던 김 위원장과 웃으며 악수했다. 도열한 인민군 사이를 지나 김 위원장과 로비에 도착한 문 대통령은 8명의 노동당 부위원장단과 일일이 악수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기념촬영을 한 후 책상 앞 의자에 앉아 방명록에 ‘평화와 번영으로 겨레의 마음은 하나! 2018.9.18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이라고 적었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의 오른편에 서서 이를 지켜봤고 방명록 작성이 끝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양측은 회담 결과물 수준에 대해 미묘한 입장 차이를 보였다. 두 정상은 평양 순안공항에서 환영행사를 마친 뒤 백화원 영빈관에서 환담을 나눴다.
문 대통령은 “평양시민이 열렬히 환영해주셔서 가슴이 벅찼다”며 “판문점의 봄이 평양의 가을로, 이제는 정말 결실을 맺을 때다. 우리 사이에 신뢰와 우정이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잘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에 김 위원장은 “‘북과 남의 인민들 마음을 잊지 말고 온 겨레의 기대를 잊지 말고 우리가 더 빠른 걸음으로 더 큰 성과를 내야겠구나’라고 생각을 가졌다”고 말했다.
첫날부터 빠르게 진행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첫 회담에서는 양측 수행원들의 면면을 보면 비핵화가 핵심의제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서 원장, 정 실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등 북한 비핵화 협상과 군사긴장 완화 등을 주도하는 핵심인물들이 대거 포함된 것을 보면 문 대통령이 북미 간 비핵화 협상 중재에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백화원에서 서 원장과 정 실장, 강 장관 등과 오찬을 하며 회담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이번 회담 수행단 중 눈길을 끄는 인물은 강 장관이다. 외교부 장관은 지난 2000년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때 동행하지 않았다. 외교부 수장의 방북을 두고 강 장관이 미국과 북한의 비핵화·종전선언 협상 국면에서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도 북미회담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리수용 당 국제담당 부위원장, 리용호 외무상이 평양 순안공항에서 문 대통령을 영접하는 등 양측은 핵 신고 등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미국에 전달할 방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평양공동취재단 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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