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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 언어정담] 글쓰기, 마침내 내가 되는 길

작가

때로는 외롭고 지칠 때도 있지만

원인은 글쓰기 아닌 바로 나 자신

마치 숨쉬듯 끊임없이 써나갈 때

내면의 세계서 살아있음을 느껴





가끔 독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는다. “작가님, 그렇게 매일 글을 쓰는 건, 정말 지치고 힘들지 않으세요?” “늘 밤잠을 설쳐가며 글을 쓰면, 글쓰기가 싫어질 때도 있지 않나요?” “기대만큼 인정받지 못하거나 비판받을 때, 글쓰기를 그만두고 싶지 않나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가만히 되돌아본다. 정말 글쓰기가 너무 외롭고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지는 않았는지. 다행히 그것은 글쓰기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다. 나는 기대만큼 해내지 못하는 내 자신이 싫을 때는 있어도 글쓰기 자체가 싫을 때는 없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도, 내가 어렵사리 떠올린 아이디어가 모두 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계속 써야한다는 것이 문제다. 그럼에도 다행히 글을 쓰는 일이 싫어진 적은 없다. 글이 잘 안 풀리는 상황이 싫거나, 충분히 준비하고도 잘 해내지 못하는 나 자신이 싫은 적은 있지만. 오히려 글쓰기 자체는 나이가 들수록 더 아름답고 신비로운 내면의 모험으로 다가온다. 자음과 모음의 결합만으로도 인간의 마음을 따스하게도, 차갑게도, 치유하기도, 아프게 하기도 한다는 것이 여전히 놀랍다.

글쓰기의 과정은 머릿속에서 지진이 일어나는 것과 비슷하다. 글쓰기의 아이디어는 마치 오래오래 생각의 지표면 아래 들끓고 있던 엄청난 온도의 마그마처럼 마침내 ‘의식’과 ‘검열’이라는 두터운 지층을 뚫고 이 세상 밖으로 폭발한다. 물론 실제 지진과는 달리,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이 글쓰기라는 지진은 그 이전보다 그 이후가 더 좋아지는 체험이다. 머릿속의 지진, 이 글쓰기라는 사건이 발생하고 나면 더욱 상쾌하고, 아픔이 오히려 치유되고, 이전보다 훨씬 좋은 상태로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준다.





얼마 전 내 책의 독자들과 함께 유럽으로 글쓰기 여행을 떠났는데, 버스에서도 노트북을 켜놓고 글을 쓰는 나를 보고 독자들이 걱정을 했다. “선생님,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계속 글을 쓰시면 많이 힘들 것 같아요.” “눈이 나빠지지 않을까요.” 물론 힘이 들고 눈이 나빠지긴 하지만 나는 그 시간을 무척 사랑한다.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회적 활동을 하다가 문득 오롯이 나 자신이 되는 느낌, 누군가에게 반드시 도움이 되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잠시만이라도 그저 투명한 나 자신이 되는 느낌이 좋았던 것이다. “작가님, 버스 안에서 계속 글을 쓰시는 거 보고 너무 놀랐어요. 어떻게 잠도 안 주무세요?” 당연히 졸음이 쏟아진다. 하지만 쏟아지는 졸음을 참고 잠깐 내 안에서 떠도는 문장을 글쓰기의 그물로 건져올리는 기쁨이 너무 크다. “그렇게 쉬지 않고 글을 쓰면 괴롭지 않으세요?” 이 질문에 나는 나도 모르게 전광석화와 같이 이렇게 대답했다. “글을 쓰지 못하는 순간이 더 괴롭거든요. 글을 쓸 수 있는 순간은 누가 뭐래도 행복하지요.” 내가 말해놓고도 내가 놀랐다. 정말 그랬다. 글을 씀으로써 느끼는 고통보다는 글을 쓰지 못할 때 느끼는 고통이 훨씬 크기 때문에 나는 어떤 순간에도 글을 쓰고 싶어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영감의 언어가 떠오르는 순간은 서랍 속에 쟁여둔 물건을 찾는 행위보다는 바닷가에서 모래밭에 떨어진 진주를 찾는 일에 더 가깝다. 생각의 서랍 속에 차곡차곡 넣어둔 아이디어들을 곶감 빼먹듯 차례대로 꺼내서 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글쓰기의 실전은 그와 다르다. 글쓰기는 매번 다른 목표를 필요로 하고, ‘남들이 좋다는 그 길이 괜찮은가?’싶어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모방의 유혹이나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쉽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영감의 별똥별이 마구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경험을 많이 한다고 아이디어가 자주 떠오르는 것도 아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계속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것, 되든 안 되든 최대한 자주 글을 쓰는 것 그 자체를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계속한다는 것 그 자체다. 나는 오늘도 글쓰기라는 내면의 청진기로 내 마음 구석구석에서 울리는 아우성을 듣는다. 때로는 슬럼프에 휘둘리기도 하고, 때로는 주변의 우환과 내 안의 울화병에 시달리기도 하면서, 그럼에도 나는 매일매일 더 나아지고 있다. 매일 글을 읽고 매일 글을 쓴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지금 여기에 생생히 살아있다는 사실을 선연하게 느낀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 어떤 칭찬보다도 더욱 기쁘고 눈부신 내면의 축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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