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머리에 30㎝ 자를 대고 눈금을 매섭게 살피는 학생주임. 조금이라도 짧게 보일세라 목을 길게 뺀 여학생. 등교 직전 귀 뒤로 머리카락을 넘기거나 물을 묻혀 바짝 머리숱을 죽이는 남학생들. 수십년간 변하지 않았던 아침9시 학교 앞 풍경이 바뀐다. 2019년 2학기부터는 서울 시내 중·고등학생들의 두발이 전면 자유화되고 염색이나 파마 규제도 지금보다 한층 완화되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은 27일 서울 학생 두발 길이의 전면 자유화를 선언하고 오는 2019년 1학기까지 각 학교에 학칙 개정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염색과 파마에 관한 규정은 각 학교가 학생들 의견을 수렴해 결정하도록 권유했다.
앞으로 학칙이 개정되면 학생들은 머리 길이를 본인이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염색이나 파마 등 두발 형태 변화는 학교별로 입장 차가 있는 만큼 학생 공론화 절차를 거쳐 개정 여부를 결정한다. 각 학교는 학생 의사가 적극 반영될 수 있도록 내년 상반기에 설문조사와 토론회를 충분히 열고 공론화 절차를 거쳐야 한다. 두발 자유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지난 1990년대 간헐적으로 나오기 시작해 2000년대 초반 크게 분출된 바 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현재 두발 길이와 두발 형태를 구체적으로 규제하는 서울 시내 중·고교는 전체의 16%에 이른다. 하지만 구체적인 두발 규제 기준이 없다는 나머지 학교도 학생의 ‘단정한 용모’를 강조하는 선언문이 학칙에 들어 있어 사실상 규제가 이뤄지고 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전면 자유화를 해달라는 일선 교사들 의견이 많았던 만큼 이번 조치가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현장에서 갑론을박이 일 것으로 생각하지만 학생들이 ‘교복 입은 시민’으로서 합리적인 판단 기준을 갖고 책임감 있게 행동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편안한 교복’ 가이드라인도 조만간 각 학교에 권고할 예정이다. 편안한 교복 가이드라인은 7월부터 서울시교육청이 서울 시민의 의사를 반영해 추진하고 있는 교복 개편 방안이다. 11월 공론화 과정이 마무리되면 2019년 상반기부터 각 학교별로 편안한 교복 적용을 논의할 예정이다. 교육청은 각 학교가 공론화 절차를 밟고 규정을 개정하면 당장 2020년 1학기부터 편안한 교복도 시행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화장에 대해서는 교육청도 별도의 지침을 마련하지 않았다. 학생들의 신체적 자기결정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한다면 화장도 추후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조 교육감은 “요즘은 초등학교마저 화장이 문제가 되는 추세이고 학교 현장에서도 심각하게 이야기하고 있다”며 “다만 화장은 두발처럼 한두 가지 영역이 아니고 매우 세세한 영역이라 아직까지는 명확한 입장정리가 안 됐다”고 말했다. 다만 두발 용모 차원에서 집단적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학교 구성원들이 스스로 규칙을 만드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고 조 교육감은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학교의 자율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현행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9조는 각 학교가 자유롭게 학생지도규칙을 결정할 수 있고 학칙도 교장이 학생과 학부모, 교원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도록 규정했다. 이미 절차가 갖춰져 있는데 교육청에서 시기를 정해 밀어붙이면 학교 차원에서 불만이 커지고 선언이 형식적으로 남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조 교육감은 “최종 결정권은 각 학교에 있다”면서도 “학생들의 신체적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게 시대적 흐름인 만큼 각 학교가 학생들의 의사를 듣고 실질적인 숙의 과정을 거치도록 권유했다”고 밝혔다.
/신다은기자 down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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