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정부가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2.4%로 설정하는 데 합의했다. 이탈리아에서 지난 6월 서유럽 최초로 포퓰리즘 세력이 정권을 잡은 지 3개월 만이다.
주세페 콘테 총리를 비롯한 정부의 주요 각료들은 예산 공개 마감 시한인 27일 밤(현지시간) 로마에서 회동을 하고 내년 예산안에 재정적자를 이같이 반영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 대표인 루이지 디 마이오 부총리 겸 노동산업장관과 극우정당 ‘동맹’ 대표인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겸 내무장관은 공동 성명을 내고 이 같은 사실을 발표하며 “변화를 위한 예산안에 만족한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정부는 그동안 재정적자에 대한 정부 내 알력으로 내년 예산안을 확정하지 못해왔다. 경제학 교수 출신의 무당파 인사로 예산안 수립의 책임자인 조반니 트리아 재정경제부 장관은 재정적자가 늘어날 경우 막대한 국가부채 부담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하며, 유럽연합(EU)과 금융 시장의 불안을 고려해 재정적자 규모를 아무리 높아도 전 정부 수준인 1.6% 아래로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반면 오성운동과 동맹은 빈민층에 월 780유로(약 100만원)의 기본소득 제공, 세금 인하, 연금 수령 연령 재하향 등 총선 전 제시한 공약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재정적자를 대폭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만일 트리아 장관이 정부의 중론에 따르지 않는다면 그의 경질도 불사할 것임을 시사해 왔다.
두 정당은 지난 달 제노바에서 일어난 모란디 고가 교량 붕괴 참사 이후 전국의 사회간접자본을 대대적으로 재정비하기 위해서라도 재정 지출 확대는 불가피하다며, GDP의 3% 이내로 재정적자를 유지할 것을 권고하는 EU의 예산 규정에 반기를 들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한편 이탈리아의 내년 예산안에서 재정적자가 GDP의 2.4%로 정해진 것은 트리아 장관으로 대표되던 정부 내 긴축 예산파가 결국 EU의 눈치를 보지 않는 포퓰리즘 정권의 실세 정치인들의 전방위적인 공세에 두 손을 든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GDP 대비 약 131%의 국가부채를 짊어져 그리스에 이어 채무 규모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2위인 이탈리아가 우려했던 대로 내년에 재정 지출을 대폭 확대하는 것이 현실화됨에 따라 투자자들과 시장의 불안은 더 커질 전망이다.
/김창영기자 k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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