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고강도 규제와 서울시의 잇단 심의 보류로 서울 재건축 시장이 빙하기에서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올 들어 강남 4구(서초·강남·송파·강동구)에서 재건축의 마지막 관문인 관리처분인가를 신청한 단지는 고작 1곳에 불과할 정도로 사실상 주요 사업장이 ‘올스톱’ 상태다. 전문가들은 “재건축을 겨냥한 정부의 전방위 규제와 서울시의 심의 보류로 주요 단지들이 정비사업 진행에 애를 먹고 있다”며 “재건축 시장에 냉각기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강남 4구에서 관리처분인가를 신청한 단지는 서초구 반포동 ‘반포 현대’ 1곳으로 조사됐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시행을 앞두고 총 19곳이 신청한 지난해에 비해 올 들어 급감했다. 서초구에서는 지난해 반포주공 1단지 1·2·4주구 등 9곳이 관리처분인가를 신청했는데 올해는 반포 현대가 유일했다. 강남구와 송파구에서는 지난해 각각 5곳, 2곳이 관리처분인가를 신청했지만 올해 현재까지 한 곳도 신청하지 않았다. 강동구도 지난해 3곳이 관리처분인가를 접수했지만 올해는 없다. 관리처분인가가 재건축의 마지막 행정절차임을 고려하면 사실상 올 들어 강남권에서 재건축 사업을 속도감 있게 진행한 단지는 거의 없는 셈이다. 이외에 재건축 대상 단지들이 몰려 있는 양천구와 용산구도 올 들어 관리처분인가 신청 단지는 ‘0’곳 이었다.
한 정비사업 관계자는 “초과이익환수 부담금 예상액 통보 등 재건축을 옥죄는 정책이 계속되자 주요 단지들이 의욕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초기 재건축 사업장들도 지지부진하기는 마찬가지다. 서울시의 잇단 심의 퇴짜와 안전진단 기준 강화 등 전례 없는 규제로 사업이 제자리걸음이다.
대표적인 곳이 송파구 잠실동 ‘잠실주공 5단지’다. 재건축 단지 최초로 국제설계공모를 시행했는데 넉달째 표류 중이다. 잠실주공 5단지는 빠른 재건축 추진을 조건으로 국제설계공모를 진행했고 지난 6월 총회에서 공모 1등작인 조성룡 건축가의 설계안을 우선협상대상으로 선정했다. 조합은 즉시 서울시 수권소위원회 상정을 요청하고 있지만 서울시는 아직 묵묵부답이다. 시는 잠실주공 5단지 내 신천초 부지 관련 기부채납 여부를 두고 시 교육청과 갈등을 해결해야 하고 공모 당선안을 거부하는 일부 조합원의 민원을 수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교육청의 요구대로 교육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면 사업은 3~4개월 더 늦어질 수 있다. 일각에서는 집값 급등 우려 때문에 수권소위 심의를 미룬다는 의견도 나온다. 잠실주공 5단지 조합 관계자는 “적법한 절차를 따랐음에도 정치적인 목적으로 계속 사업을 막는다면 대규모 집회를 열어 시장에게 면담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정비계획안도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사에서 지금까지 네 번이나 고배를 마셨다. 공공보행통로변 시설 계획 등에서 보완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최근 “은마아파트 재건축 정비계획 논의를 올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설상가상으로 현 추진위원회에 반기를 들어 일부 조합원이 ‘은마아파트소유자 협의회(은소협)’를 구성, 1대1 재건축을 추진하기로 해 또 하나의 변수가 생긴 상황이다. 강남구 압구정 단지 재건축도 아직 갈 길이 멀다. 최근 압구정 3구역이 추진위원회 승인을 받기는 했지만 단지 내 역사문화공원 조성을 계획한 서울시의 지구단위계획에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어 협의가 필요하다.
이 밖에 재건축 가능 연한인 ‘준공 후 30년’을 채운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주요 재건축 단지들은 정부의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강화로 예비안전진단만 받고 추가로 사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시범·수정 등 여의도 아파트들은 지난달 박 시장의 ‘여의도 통개발 보류’ 발표에 재건축 추진에 급제동이 걸린 상태다.
전문가들은 반포주공 1단지 3주구 등 주요 단지들이 연말에 재건축 부담금을 통보받으면 재건축 시장이 더욱 얼어붙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재건축 부담금 공포까지 겹치면 강남권을 중심으로 재건축 시장이 더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동훈·이재명기자 hoon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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