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 실패라는 비보를 맞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향후 제3국 수출에 상당한 애로를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자칫 ‘가격 대비 성능이 떨어지는 기종’이라는 낙인이 찍힐 경우 기존 수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KAI는 인도네시아·이라크·필리핀 등 중동과 동남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고등훈련기 64대를 수출했으며 이번 미 공군 APT 사업 수주를 계기로 해외 수출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었다. KAI 측은 APT 수주에 성공할 경우 오는 2025년 미 해군용 훈련기 650여대 33조원, 제3국 시장 수출 50조원 등 사업 규모가 100조원대로 확장될 수 있다고 내다보기도 했지만 APT 사업 수주 실패로 계획은 전면 수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KAI는 그간 T-50을 5세대 전투기에 최적화된 훈련기라며 홍보해왔지만 이번에 아직 개발도 끝나지 않은 보잉-사브의 훈련기에 패하면서 향후 글로벌 훈련기 수주 경쟁에서 고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KAI가 향후 글로벌 수주 경쟁에서 장점으로 내세우려고 했던 이번 수주전 결과가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아울러 KAI는 최근 해병대 상륙기동헬기(마린온) 추락 사고로 침체된 분위기와 이에 따른 3,443억원 규모의 수리온 계열 인도 지연 등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도 놓치게 됐다.
방산업계도 KAI의 입찰 탈락 소식에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 KAI가 이번 입찰에서 승리할 경우 전 세계적으로 한국 방위산업의 경쟁력을 인정받는 계기가 되면서 향후 다른 방산 무기 수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또한 KAI가 사업자로 선정될 경우 수십개의 한국 기업들이 부품 공급사로 참여하면서 낙수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항공기 1대를 수출하는 것은 중형 자동차 1,000여대를 수출하는 것과 같은 경제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의 10배가 넘는 20만~30만개 부품으로 만들어지는 항공기 생산이 대부분 수작업으로 이뤄지다 보니 이에 따른 고용창출,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도 높기 때문이다. T-50에 들어가는 항공전자 부문 부품·엔진 등을 공급하는 LIG넥스원·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도 직간접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KAI가 수주에 성공했을 경우 국내 방산업체들의 일감 증가 및 고용창출, 이로 인한 지역 경제 활성화, 기업가치 향상 등을 도모할 수 있었지만 이 같은 계획이 전면 백지화된 것이다.
세계 최강인 미 공군에 훈련기를 공급하는 방산업체와 국가라는 상징성도 놓치게 됐다. 대형 방산업체의 한 관계자는 “세계 최대의 방산 기술력을 갖춘 미국이라는 나라에 방산무기를 공급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상징성이 크다”며 “한국 방위산업의 위상이 달라질 수 있는 중요한 프로젝트였는데 아쉽게 됐다”고 전했다. 다만 저강도 분쟁에 투입되는 경공격기로서 수출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평가도 나온다. 영국이 가상 적기용으로 2대 수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은 최소한의 성능을 인정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KAI의 입찰 탈락이 글로벌 경쟁력이 아닌 한국 군 수요에 초점을 맞춘 한국 방위산업이 가진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영수 산업연구원(KIET) 선임연구위원은 “한국 방산업체들이 해외시장과 수출을 염두에 두고 전략적으로 무기개발을 하지 못하다 보니 가격 경쟁력에서 한계를 느끼고 있다”며 “방위산업을 수출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무기개발 단계부터 해외시장과 수출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방산 수출이 정부와 정부 간의 관계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감안해 “정부의 방산 관련 모든 부처들이 수출을 위해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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