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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션샤인 인물전사⑤] 유진 초이 "불꽃같은 당신 씨유…어게인"





어미도 아비도 노비였다. 죽음이란걸 너무 일찍 깨닫게 된 탓일까, 그는 미국에서 유색인종으로는 가장 존중받을 수 있는 군인의 길을 택했다.

전선을 뚫어 지기를 구하고, 대위가 되어 찾은 조국 조선은 그에게 복수의 대상일 뿐이었다. 억울하게 죽은 아비와 어미의 복수.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그는 수십년간이나 쌓아온 분노를 가라앉혔다. ‘재산이 축난건 아까우나 종놈들에게 본을 보였으니 손해는 아니라’는 인간들. 작은 세상에 멈춰버린 그들의 사고가 작금의 조선과 같기 때문이었을까.

유진 초이(이병헌)에게 조국을 벗어난 아홉 살 무렵부터 그에게 조선은 없었다. 밟고 지나야 하는 디딤돌일 뿐이었다. 또다른 조국 미국이 손을 내밀었지만, 그것이 점령을 위한 손임을 알았다. 그는 조선을 밟고 나의 진짜 조국에 충성하리라 생각했다.

그녀를 만난건 뜻하지 않은 곳에서였다. 운명이란건 늘 그렇게 예기치 않게 불쑥 찾아온다. 정보를 팔아 넘기는 미국인 암살 지령을 받은 그는 ‘성공하면 미국인, 실패하면 조선인’으로 조국이 자신을 대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곳에서 마주한 총구. 동지인가, 적인가 분간해야 하는 상황에서 유진 초이는 고애신(김태리)에게 물었다. “어느쪽으로 가시오. 그쪽으로 걸을까 하여.”



전쟁영웅이 보기에 조선 사대부 애기씨의 과격한 낭만은 즐거운 이야깃거리였는지 모른다. 세상물정 모를 것 같은 그녀에게 그는 한숨을 내쉬듯 말을 던진다. “귀하가 구하려는 조선에는 누가 사는거요. 백정은 살 수 있소, 노비는 살 수 있소.”

때로는 러브를 묻는 그녀에게 “혼자는 못하오. 총 쏘는 것보다 더 어렵고, 그보다 더 위험하고, 그보다 더 뜨거워야 하오”라며 넌지시 속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녀와 마주치고 함께하며 유진 초이는 생각했다. 조선에서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그건 조선을 망하게 하는 쪽이 될 테니까. 혹시 나를 걱정하냐는 고애신의 말에 그는 짤막히 답한다. “내 걱정을 하는거요.”

꽃이 흐드러지게 핀 외나무다리 위에서 그는 사랑을 고백했다. “합시다 러브. 나랑 같이.” 통성명 악수 그 다음엔 허그. H까지 다 뗀 그녀 앞에 그는 무너져내린다. 그녀는 아버지로 여기던 요셉을 잃은 그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가 됐다.



유진 초이는 고애신만은 지켜내기로 마음먹었다. “수나 놓으며 꽃으로만 살아도 된다”는 말에 그녀는 답한다. “나도 꽃으로 산다”고, 그것도 ‘불꽃’으로. 저 여인의 뜨거움과 잔인함 사이 나는 어디쯤 있는지.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더 가야할지도 모르겠다. 불꽃속으로.



그가 무관학교 교관 제의를 수락한건 그 때문이었다. 궁에서 마주친 그녀에게 유진 초이는 “누군가의 동지를 키워내는 일이 될 수 있다”고 고백한다. 내 진심이 닿길 바란다고. 오얏꽃을 보며 사계절 내내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그렇게 그녀가 왔다. 부탁을 하러. “부탁이 아니라 고백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사랑한다고. 그러니 함께 가자고. 난 또 그 거짓말에 눈이 멀어 내 전부를 거는거라고. 그렇게 고애신은 애신 초이가 됐다. 당신이 나를 꺾고 조선을 구하고자 한다면 천번이고 만번이고 꺾이겠구나. 그는 알면서도 좋았다.

의병들의 싸움은 승산이 없다. 대체 질 싸움에 목숨을 왜 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랑의 끝은 해피엔딩이어야 할 것 아닌가. 그는 “이렇게 못 보내겠다고” 한번 잡아보지만, 이내 구슬픈 운명의 끈을 놓지 못했다. 그리고 “씨유 어게인.”

그렇게 모든 것을 잃은 그는 3년 만에 다시 일어섰다. 내 모든 생을 다 쓰겠다고. 그 모든 걸음을 헛된 희망에 의지하였으니 살아만 있게 해달라고. 그 이유 하나면 나는 듯이 가겠다고. 그는 이 걸음이 해피로 끝나든 새드로 끝나든 마지막이 될 것을 안다. 그렇게 그는 애신 초이를 위해 다시 불꽃 속으로 뛰어들었다.



/최상진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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