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홍섭(72·사진) 쁘띠프랑스 회장은 중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가세가 기울면서 중학교 2학년 때 중퇴를 할 수밖에 없었던 그는 열여섯 살 때부터 장사를 시작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우면 대개 형제자매들 가운데 장남에게 ‘투자’를 하는 게 그 시절의 분위기였습니다. 우리 집에서도 공부는 큰 형님의 몫이었죠. 학교를 그만두고 고향인 경기도 용인을 떠나 서울로 올라갔어요. 당시 서울에서 니스 제조업을 하던 외사촌 형님 밑에서 장사를 처음 배웠습니다.”
가내공업 수준의 공장에서 드럼통 몇 개를 놓고 만든 니스를 자전거에 싣고 일일이 거래처를 찾아다니며 영업하고 배달하는 게 당시 한 회장의 일이었다. 그렇게 3년을 보낸 후 한 회장은 직원 한 명을 데리고 청계천 상가 1층에 자그마한 니스 회사를 차렸다. 한 회장은 “10대 시절부터 몸으로 부딪히며 익힌 영업 노하우와 사업 감각은 훗날 페인트 회사와 쁘띠프랑스를 운영하는 데 큰 자양분이 됐다”고 회상했다.
한 해 방문객만 100만명에 달하는 관광 테마파크의 대표이지만 한 회장은 지금도 ‘배움’을 향한 갈망을 숨기지 못한다. 어린 시절 정규 교육과정을 제대로 마치지 못한 그는 지난 30년 동안 대학원 최고위 과정만 10곳 이상 수료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유행과 고객의 마음을 따라잡으려면 ‘공부’ 이외엔 답이 없어요. 문화와 경영에 대한 안목을 쌓고 싶어서 고려대 최고위 경영자 과정, 중앙대 건설대학원 최고위 과정, 숙명여대 미래문화 최고경영자 과정 등 일일이 다 열거하기 힘들 만큼 많은 학교를 찾아다녔습니다. 페인트 사업이 달리 아는 게 없어서 선택한 일이었다면 테마파크 사업은 진정으로 뜻하는 바가 있어 시작한 일이니 이 정도의 노력을 쏟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쁘띠프랑스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한 회장은 지금도 여러 지방자치단체나 개인 사업자들로부터 “충분한 지원을 해줄 테니 또 다른 테마파크를 함께 만들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고는 한다. “정말 감사한 제안이지만 현재까지는 모두 정중하게 거절의 뜻을 전하고 있어요. 내후년 문을 여는 이탈리아 마을과 쁘띠프랑스만 챙기기에도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만큼 빠듯해요. 과한 욕심으로 사업을 무작정 확장하기보다는 선택과 집중으로 가평의 이 문화마을이 관광객들의 마음속에 오래 남는 명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죠.”
/가평=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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