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차별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 들어 전 세계 곳곳에서 성 평등을 외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몇 세기 전과 달리 일하는 여성이 증가하면서 직장 내에서의 성차별 해소를 요구하는 내용이 많다. 동일 근무, 동일 노동에도 성별에 따라 임금이 달라진다는 남녀 임금 차별이 중심에 있다. 지난 4월 영국 하원의원들이 직장 내 임금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전개한 ‘페이미투(Pay Me Too)’ 운동이 유럽 전역으로 번졌다. 지난달부터는 유럽 국가 중에서도 임금 공개에 상당히 보수적인 것으로 알려진 스위스 젊은층 사이에서 자신의 직업과 임금을 셀카에 적어 올리는 ‘너의 임금을 보여줘(Zeig Deinen Lohn)’ 캠페인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남녀 임금격차 만년 꼴찌인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떨까. 문재인 대통령 역시 후보 시절부터 ‘남녀 동수 내각 추진’ ‘성 평등 임금공시제도 도입’ ‘남녀 임금격차 OECD 평균인 15%대로 축소’ 등의 공약을 내걸었다. 당선 후에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조치로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 설치를 국정과제에 포함시켰지만 해당 정책에 대한 논의는 진척이 없다. 2016년 발표된 OECD 통계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우리나라의 남녀 임금격차는 36.7%로 전체 회원국 중 최하위다. 남성 정규직 근로자의 중위임금이 100일 때 같은 조건의 여성 중위임금은 63.3으로 격차가 36.7이라는 얘기다. 2000년 이후 15년째 꼴찌 자리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OECD 회원국 평균 수치인 14.1%는 물론 독일 15.5%, 영국 16.8%, 미국 18.1%보다 두 배 이상이다. 김은경 세종리더십개발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주요 국정과제였던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 설치와 남녀 임금격차 축소는 지금 다른 의제에 밀려 사라진 지 오래”라고 말했다.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가 큰 이유는 학력·군 문제 등을 감안해도 출산·육아로 인한 여성들의 경력단절, 여성들의 비정규직 업무 집중, 성 역할의 고정관념 등이 해결되지 않아서다. 한국 여성의 고용률은 30대 중반부터 급감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 결혼 후 출산과 육아로 인해 일을 그만두는 여성이 발생한다는 얘기다. 국회예산정책처의 ‘2017회계연도 결산 총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령대별 여성 고용률은 25~29세 사이 69.6%까지 높아지다가 35~39세에 58.1%로 급감, 45~49세 들어 69.7%로 올라간다. 30대 중반에 고용률이 큰 폭으로 떨어지는 M자형 모양이다. 20대 중반부터 30대 후반까지 선진국의 여성 고용률은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돼 역 U자형 모양을 이룬다.
경력단절 여성이 재취업할 경우 비정규직이나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업무를 구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도 임금격차의 또 다른 원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여성 비정규직 비중은 전체 여성근로자의 41.2%로 남성(26.3%)에 비해 훨씬 높다. 비정규직의 경우 남성은 퇴직이 시작되는 50대부터 조금씩 늘다가 60세 이상부터 급증하지만 여성의 경우 40대부터 비중이 크게 늘어난다.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은 이공계 직군에 여성의 비중이 낮다는 점에서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탈피해야 임금격차를 줄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대학 내 여학생 비중이 인문계열과 달리 이공계열에서는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2016년 4년제 대학 공학계열의 여학생 비중은 17.6%에 불과했다. 기계·금속 분야의 경우 6.8%, 전기·전자 분야는 11.1%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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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포럼은 남녀 임금격차가 완전히 사라지는 데 217년이 걸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남녀 교육 수준에 차이가 없음에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많은 차별이 경제적·사회적으로 얼마나 남아 있는지 보여주는 수치다. 통계청이 7월 발표한 ‘2018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지난해 여성의 대학진학률은 72.7%로 남성보다 7.4%포인트 높았다. 김난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2009년 이후부터 줄곧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남성을 넘어섰지만 임금 차별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을 보면 단순히 학력에서 발생하는 차별이 아니다”라며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경력단절로 인한 비정규직 혹은 저임금 일자리 쏠림 현상 등의 해소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지윤기자 lu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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