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1시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좌승함(座昇艦·사열하는 주인공이 타는 배)인 남극 탐험선 인듀런스함에 탑승하자 웅장한 막이 올랐다. 여왕이 탄 배가 지나칠 때 함정에서는 일제히 예포를 쏘고 뱃전에 도열한 수병들은 모자를 흔들어 예우를 표했다. 그때마다 항구에 운집한 15만명의 인파가 환호성을 질러대 열기가 대단했던 모양이다. 21세기 최대의 관함식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관함식은 국가원수가 자국 군함의 전투태세 등을 점검하는 해상사열식으로 통치력이나 해군력을 과시하는 게 목적이다. 1346년 6월 영국 에드워드 3세가 프랑스와의 전쟁에 출전하는 함대의 전투태세를 검열한 게 시초로 알려져 있다. 대영제국의 식민지배가 절정에 달했던 19세기에는 스핏헤드 관함식을 통해 국력을 과시하고는 했다. 지금까지 영국 관함식은 ‘트라팔가 200’ 등 50차례가 넘는다고 한다.
영국과 영연방 중심이던 관함식은 2차대전 이후 한국과 일본·인도네시아 등으로 퍼졌다. 요즘은 외국 군함을 초청해 군사교류를 다지는 국제행사로 치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국이 개발한 새로운 군함을 소개하는 기회로 활용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최초 관함식은 1949년 이승만 대통령 때 인천해역에서 열렸다. 1962년 부산 오륙도 앞바다에서 한 번 더 개최된 후 중단됐다가 건군 50주년 기념으로 1998년 ‘대한민국 국제관함식’으로 부활했다.
이후 2008년, 2015년 등 현재까지 세 번 열렸다. 네 번째인 이달 11일 제주 관함식에서의 일본 해상자위대의 욱일기 게양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일본이 군국주의 상징인 욱일기를 고수하는 가운데 일본 함정의 제주입항을 막아야 한다는 청와대 청원이 빗발치고 1일에는 최대 보수단체 자유총연맹까지 반대 성명을 냈다. 외교부가 ‘국민 정서 감안’ 입장을 일본에 전달하면서 정부 간 갈등도 우려되고 있다. 미래로 나가야 할 한일관계가 자꾸 과거에 발목이 잡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임석훈 논설위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