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심장학회(ACC)와 미국심장협회(AHA)는 지난해 11월 고혈압 진단기준(수축기/이완기 혈압)을 우리나라도 쓰고 있는 140/90㎜Hg 이상에서 130/80㎜Hg 이상으로 강화하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고혈압 환자의 치료 목표혈압도 130/80㎜Hg 미만으로 더 철저하게 조절할 것을 권고했다.
2일 분당서울대병원에 따르면 강시혁 분당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팀은 지난 2013∼2015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참여한 30세 이상 성인 1만5,784명의 고혈압 유병률, 2002~2003년 고혈압 진단을 받고 약물치료를 받은 30세 이상 성인 37만3,800명의 이후 평균 11년 간 주요 심혈관질환 발생 여부를 추척조사해 이 같은 결론을 도출했다.
연구 결과 고혈압 진단기준을 미국 기준(130/80㎜Hg 이상)으로 강화하면 우리나라 30세 이상 성인의 고혈압 유병률이 30.4%에서 49.2%로 높아졌다. 다만 실제로 고혈압이 중증이거나 심혈관질환 등 합병증이 진행돼 약물치료가 필요한 환자의 비율은 29.4%에서 35.3%로 소폭 증가했다. 고혈압 환자가 18.8%포인트 증가하지만 이 중 3분의1 정도만 약물치료가 필요하고 3분의2는 ‘약물치료가 아닌 건강한 생활습관이 권고되는 그룹’에 해당하는 셈이다.
이와 관련, 강 교수는 “미국의 기존 가이드라인이 혈압 140/90㎜Hg 이상이면 무조건 약물치료로 혈압을 낮추라는 것이었다”며 “반면 새 가이드라인은 혈압이 130/80㎜Hg 이상이면 고혈압으로 진단하되 심혈관질환이 있거나 심혈관질환 위험이 높은 경우 등에는 약물치료를 통해, 그렇지 않은 건강한 고혈압 환자는 식단조절·운동 등 생활습관 개선을 통해 혈압을 130/80㎜Hg 미만으로 낮추는 노력을 하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또 “140/90㎜Hg 이상을 고혈압 진단기준으로 쓰는 우리나라도 고위험군은 약물치료를 통해 혈압을 130/80㎜Hg 미만으로 관리하도록 권고하고 있어 미국 기준을 도입하더라도 크게 달라지는 부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덧붙였다.
반면 미국 기준으로 바꾸면 고혈압 환자들의 심혈관질환 발생위험을 21% 낮출 수 있다. 강 교수팀이 고혈압 진단을 받은 환자들을 평균 11년 간 추적관찰했더니 1~2년 뒤 건강검진에서 혈압이 130/80㎜Hg 미만으로 떨어진 그룹은 140/90㎜Hg 미만으로 떨어진 그룹에 비해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이 21% 낮았다.
이번 연구에 제1저자로 참여한 이지현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고혈압 환자들이 본인의 목표혈압을 보다 철저하고 적극적으로 관리할 경우 고혈압뿐만 아니라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도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미국에서 발표한 새 가이드라인은 고혈압에 대한 인식을 증진시키고 식습관 개선, 운동을 통한 예방과 비약물적 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며 “고혈압은 심뇌혈관질환·신장질환·치매 등 다양한 질병을 유발하는 위험인자인 만큼 일찍부터 혈압에 관심을 갖고 최적 수치인 120/80㎜Hg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목표혈압을 140/90㎜Hg 미만에서 130/80㎜Hg 미만으로 낮추려면 보통 고혈압약을 한 알 더 먹어야 한다. 그런데 복용량을 늘리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환자가 많고 단기적으로 어지럽거나 힘들어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혈압이 매우 높은 환자나 고령자 등은 심한 경우 저혈압 증세로 쓰러져 엉덩관절에 금이 가거나 부러지는 등 부상을 입기도 한다. 콩팥 기능이 나빠질 수도 있다. 많이 복용하는 고혈압약인 안지오텐신 차단제는 심장·콩팥 합병증 예방·치료 효과도 좋아 널리 처방되고 있지만 콩팥의 중요 기능인 혈액여과 작용을 하는 사구체(絲球體) 혈관의 압력을 떨어뜨린다. 따라서 고령자, 탈수나 콩팥혈관 동맥경화증이 심한 고혈압 환자는 약 복용 및 체내 수분·염분 관리에 주의해야 한다.
강 교수는 “따라서 무작정 목표혈압을 낮게 잡는, 즉 혈압약을 세게 쓰는 게 최선은 아니다”며 “특히 하루 중 혈압이 유난히 들쑥날쑥하다면 가정혈압계로 혈압을 자주 체크해 자신의 혈압 패턴을 확인하면서 목표혈압을 낮춰가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혈압은 계절·시간·컨디션 등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반면 미국의 새 가이드라인을 적용하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고혈압 환자로 분류되고 약물치료에도 혈압이 140/90㎜Hg 미만으로 떨어지지 않는 환자들이 많아 사회적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반대론도 만만찮다. 대한고혈압학회는 지난 5월 개정 고혈압 진료지침에서 기존 진단기준(140/90㎜Hg 이상)을 유지했다.
/임웅재기자 jae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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