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5·1경기장 연설과 대담한 평화를 추구하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은 한반도가 대전환의 계곡에 들어섰음을 역설하고 있다. 전쟁의 공포와 군사적 위협은 지난 70년간 대한민국의 온전한 발전을 방해하는 선천적 장애와도 같았다. 그런데 어느 사이에 냉전의 최전선이던 비무장지대(DMZ)가 세계적인 생태평화공원으로 부각되고 동북아 철도공동체와 에너지공동체와 같은 새로운 상상이 가능해지고 있다. 남북관계를 보는 시각도 통일안보 논리 일변도에서 경제와 일자리의 관점으로 바뀌는 중이다. 그러나 중국 바로 보기를 설파한 ‘전환시대의 논리(이영희, 1974)’가 한중수교라는 현실이 되기까지에는 20여년의 전진과 후퇴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질적 전환의 시대로 들어서는 것은 맞지만 현명한 지도자라면 역풍과 시련을 함께 대비해야 한다.
전환의 계곡을 무사히 빠르게 건너기 위해 가장 필요한 리더십은 긴 호흡으로 폭넓은 국민적 동의를 얻어내는 일이다. 독일의 사례를 거론할 필요도 없이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하는 대역사가 한 정권만의 성과일 수 없으며 일시적인 정치적 지지의 소재가 될 수도 없다. 판문점선언과 평양선언의 국회 비준이 정쟁의 불씨가 돼 진영을 가르고 강경보수 세력을 몰아세우는 무기로 활용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전환시대 리더십의 요체는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소득주도성장은 신전환시대의 논리를 경제사회정책에 접목한 격이다. 그동안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성공 방정식이었던 대기업 중심의 수출주도 성장전략은 분명 한계에 도달했다. 더 이상 좋은 일자리 창출이 어렵고 사회통합을 위협할 정도로 양극화가 심해졌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혁신 중소기업이 힘을 내는 내수주도 성장전략으로 질적 전환을 이뤄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다. 이는 분배를 개선하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해 소득 3만달러 시대에 걸맞은 복지국가를 건설한다는 전략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자연스러운 발전 경로라고도 하겠다.
그렇지만 문재인 정부의 경제 패러다임은 지금 전환의 계곡에서 동력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원인은 조급함이고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짜 원인은 미숙함이다. 한국 경제의 체질을 바꿔놓겠다고 나선 개혁의 선봉장들이 초단기 경제지표로 쓰이는 월별 고용동향과 분기별 분배지표 변동에 목을 매는 모습을 보이며 실력이 다 드러난 셈이다. 정부는 차라리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작명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 중심 내수주도라는 새 성장전략의 내용을 보다 충실하게 설명했어야 한다. 그리고 집권기간에 추진할 중장기 실행계획을 범정부 차원에서 차근차근 제시하며 폭넓은 국민적 동의를 구하려 노력했다면 정책 환경이 지금보다 훨씬 나았을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더 우려되는 점은 외화내빈의 말잔치만 무성하다가 눈앞에 닥친 위험도 보지 못하고 미래에 닥칠 위기에 대한 대비도 소홀히 하는 것이다. 정부는 지금 복지지출 확대와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줄이기와 같은 분배정책에는 열심이지만 희생과 고통이 따르는 낙후산업의 구조조정과 양극화된 노동시장의 구조개혁과 같은 밀린 숙제에는 손도 대지 않는다. 또한 미중 무역전쟁으로 대외여건이 갈수록 악화하고 금융위기 10년 주기설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지만 정부의 대응 태세는 평온하기만 하다. 정부는 정말 여러 위험요인들을 잘 관리하면서 한국 경제의 구조적 전환에 성공할 수 있을까.
한반도의 운명을 바꾸고 경제 체질을 일신해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열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신전환시대 구상은 시대적 정당성을 갖고 있다. 다만 구상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질서 재편에 따르는 갈등과 고통을 감내할 정치적 리더십이 뒷받침돼야 한다. 더 큰 혼돈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지 않기 위해 전환의 시대를 함께 열어가자는 폭넓은 국민적 동의, 여러 이해집단과의 다각적인 협의와 조정, 그리고 국회 차원의 국가 대타협을 만들어내는 큰 리더십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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