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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골목 인문학] 개발 광풍이 앗아간 골목길의 옛 이야기

■임형남·노은주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거리가 간직한 세월의 흔적

인문학적 감수성 얹어 묘사

동네가 트렌드로 치장할 때

본연의 색깔 점차 희미해져

변신의 역설 향한 회한 담아





부산역 바로 건너편에 자리 잡은 초량동은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이 도시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속살을 간직한 곳이다. 초량동 언덕배기에는 가파른 경사지에 틈새도 없이 허름한 주택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20세기 초반 개항기 시절 부두나 시장에서 일하기 위해 찾아든 노동자들과 6·25전쟁 이후 폭발적으로 유입된 인구를 도시 인프라가 미처 감당하지 못한 결과다.

서울 북창동·남창동 골목 스케치


‘골목 인문학’은 이처럼 도시의 숨은 거리에 얽힌 스토리들을 입담 좋은 이야기꾼처럼 조곤조곤 들려준다. 저자인 임형남·노은주는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동문으로 현재 ‘가온건축’이라는 사무소를 함께 운영하고 있는 부부지간이다.

책은 크게 두 갈래로 읽힌다. 먼저 도시 곳곳에 놓인 골목길의 탄생 배경과 세월의 흐름에 따른 변화 과정을 훑는다. 10쪽 안팎의 에세이 42편은 서울·부산·담양·속초 등의 국내 도시는 물론 중국·일본·체코·터키까지 넘나들며 세계 각국의 거리에 현미경을 들이댄다. 이상과 박완서, 프란츠 카프카의 문학 작품부터 도시의 어제와 오늘을 있게 한 근현대사까지 종횡무진 누비며 ‘골목 인문학’이라는 책 제목에 걸맞은 큰 그림을 완성해낸다.

일본 도쿄의 메구로 골목 스케치




일본 도쿄의 메지로(目白)·메구로(目黑) 동네에 숨은 이야기는 특히 흥미롭다. 지하철 몇 정거장을 사이에 둔 이 동네들의 한자 명칭은 각각 흰 눈, 검은 눈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다소 섬뜩하기도 하고 시적이기도 한 이 이름의 근원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천하를 통일하고 에도 막부를 세운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도쿠가와의 핵심 측근이었던 덴카이라는 사람이 막부의 안녕과 국가의 태평을 기원하는 의미로 도쿄에 다섯 개의 절을 지었는데 그 절들이 각각 흑·백·적·청·황 등 5개의 색깔을 상징했다고 한다. 이후 세월이 흘러 세 군데는 사라지고 메구로·메지로 동네의 흑과 백을 상징하는 절만 남았다. 저자는 “번화가가 소리를 줄인 대형 텔레비전 같다면, 일본의 골목은 그 반대다. 영상은 사라지고 소리만 두런두런 남은 메지로 골목에서 500년도 훨씬 더 된 옛이야기를 오랫동안 듣고 있었다”고 회고한다.

부산 초량동 골목 스케치


이 책의 첫 번째 갈래가 인문학적 감수성 위에 얹은 도시 여행기라면 나머지 한 축은 거침없는 개발의 광풍에 휩쓸려 스러져가는 풍경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회한이다. 저자는 서울 압구정동 로데오거리를 거닐다가 문득 트렌드만 좇다가 개성을 잃어버린 도시의 외양을 생각한다. 화려한 가게들이 우후죽순 등장하며 신사동 가로수길이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가 갑자기 경리단길과 성수동이 대세라고 하고 또 마포 연남동 철길을 정비하자 ‘연트럴파크’라고 치켜세우는 모습을 보며 “독자적인 콘텐츠 없이 거리의 색이 희미해지고 있다”고 한탄한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딱 어울릴 만큼 재빠른 변신에 성공한 서울 강남 개발의 역사에 대해서는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어떤 의도와 특혜의 개입이 없는 단순한 자연적인 성장이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꼬집는다.

이렇게 장점이 가득한 책이지만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부분도 없지 않다. 42편의 에세이들은 14편씩 정확히 3등분 되어 3부로 흩어져 있는데 어떤 계통과 체계로 나뉘었는지 기준이 모호하다. 또 책에는 저자들 개인의 성장 과정과 일화도 적잖이 담겨 있지만 어느 글이 어떤 저자의 작품인지 명기가 안 돼 있다는 점도 독자의 괜한 궁금증을 유발한다. 1만7,000원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사진제공=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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