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은 글로벌경제 트렌드다. 저성장 시대의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스타트업 창업은 청년들의 희망이 됐다. 그러나 스타트업은 장밋빛이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스타트업 기업이 5년 살아남을 확률은 27.3%에 불과할 정도로 스타트업의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자신만만하게 시작했지만 자본을 잠식하고 사라지는 기업들이 부지기수다. 아이디어와 자신감만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방증일 것이다.
포브스가 선정한 글로벌 10대 액셀러레이터이자 파운더스 스페이스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븐 호프먼이 최근 출간한 ‘코끼리를 날게 하라’를 통해 ‘소리 없이 사라지는 기업과 위대한 기업’은 어떻게 다른지를 낱낱이 공개했다. 특히 호프먼은 인스타그램 등 ‘핫한’ 기업들을 창업 초기에 인큐베이팅한 경력을 비롯해 ‘스타트업의 심장’이자 ‘스타트업의 공장’ 실리콘밸리에서 스타트업을 직접 운영했던 경험을 전하며 그는 성공하는 기업에 가장 필요한 것은 ‘급진적인 혁신’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을 책 제목에도 스며있다. 책 제목에 등장하는 ‘코끼리’란 가능성의 씨앗을 품고 있지만 바닥에 딱 붙은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 아이디어를 일컫는다. 그러나 이 책은 제대로 된 혁신을 거치면 코끼리도 ‘유니콘’처럼 날아오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호프먼은 또 독보적인 기술이 있다고 해서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위대한 아이디어와 원대한 비전 역시 성공하는 스타트업의 조건일 수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위대한 아이디어는 큰 비전이 아니라 작은 실험과 우연한 발견의 산물이기 때문에 작게 생각할 수 있는 환경과 구조를 창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현재는 가장 영향력 있는 미디어로 꼽히는 유튜브의 경우도 처음부터 ‘글로벌 방송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원대한 비전은 없었다. 그저 동영상 데이트 사이트였을 뿐이지만 혁신의 게기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 찾아왔다. 유튜브의 공동창업자가 재닛 잭슨의 노출 사고가 담긴 동영상을 찾지 못하고 좌절했을 때, 그리고 첨부파일 용량 제한 때문에 이메일로 동영상을 공유할 수 없어서 역시 좌절했을 때 ‘혁신의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이다. 바로 ‘온라인에서 동영상을 공유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 이렇게 유튜브는 동영상 공유 매커니즘을 구축했고, 이 ‘사소하지만 급진적인 혁신’으로 인해 ‘유튜브 시대’를 만들어냈다.
또 책은 시행착오를 줄이고 ‘시장에 통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우선 미국에서 한창 가정집에 식사를 배달하는 기업이 늘어났던 당시 저자가 운영하는 파운더스 스페이스를 찾아온 스타트업 창업자를 예로 들었다. 미국에서는 음식을 팔려면 법적으로 허가를 받은 업무용 주방에서 준비하고 요리를 해야 하는데, 이 창업자는 이러한 상황을 보고 업무용 주방이 필요한 식품기술 기업과 영업시간 외에는 주방을 사용하지 않는 식당을 연결해주는 아이템을 떠올린 것. 창업자는 대부분이 그렇듯 플랫폼 구축을 먼저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호프먼은 그를 찾아온 예비창업자에게 “플랫폼 구축을 당장 중단하라”고 권했다. 그 대신 “간단한 랜딩 페이지(인터넷 마케팅 과정 중 하나로, 검색엔진, 광고 등을 경유하여 접속하는 유저가 최초로 보게 되는 웹페이지)를 이용해서 식당 주인에게 업무 시간 외에 다른 기업에 주방을 빌려줄 용의가 있는지를 묻고, 동시에 주방이 필요한 기업들에는 계약에 관심이 있는지를 물으라”고 조언했다. 창업자는 어떤 대답을 얻었을까? 식당 주인들은 다른 사람이 자기 주방을 엉망으로 만들지 않기를 원한다고 답했고, 기업들은 시간 제약 없이 공간을 사용하고 싶다는 의향을 밝혔다. 식당주인과 기업들의 니즈가 판이했던 것이다. 그러니 만약 이 예비 창업자가 의욕이 앞서 성급하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비즈니스화 했다면, 아마도 시간과 돈만 허비하고 실패했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또 2014년에는 대구시와 2017년에는 한국콘텐츠진흥원과 업무 협약을 맺어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호프먼은 한국의 혁신이 필요한 한국 기업문화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한국인은 믿기 힘들 만큼 최신 기술을 꿰뚫고 있지만, 도전하려는 의지, 커뮤니케이션 능력, 문화적 다양성, 색다른 아이디어와 시각에 대한 개방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한편,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만 하는 직원을 최고의 직원으로 인정하는 한국의 기업 문화도 혁신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물이라고 이에 대한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호프만의 결론은 이것이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도 기술도 ‘시장과 제품의 적합성’이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1만8,000원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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