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룡이지만 하늘을 날지 못하는 작은 공룡 프논, 육식공룡 중에서도 사납기로 유명한 티라노사우르스지만 덩치만 컸지 육식은커녕 작고 희귀한 빨간 열매만을 먹는 티라노. 세상의 눈으론 괴상하기 짝이 없는 두 공룡은 우연히 만나 ‘천국’으로 가는 여정을 함께 밟는다. 빙하기가 다가오며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는 지구에서 천국은 따뜻한 날씨에 채식공룡들이 즐기는 빨간 열매가 널려 있는 곳이다. 그러나 천국에 사는 채식공룡들은 육식공룡인 프논과 티라노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다른 육식공룡들의 공격까지 받게 되며 두 공룡은 물론 ‘천국’까지 위기를 맞게 된다.
지난 5일 부산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 마련된 오픈시네마를 통해 세계 최초로 상영된 ‘안녕, 티라노: 영원히, 함께’(이하 ‘안녕, 티라노’)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가운데서도 단연 화제의 중심에 있는 작품이다. 골든 글로브상과 그래미 어워드, 아카데미 음악상을 모두 받은 최초의 아시아인인 영화 음악의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가 처음으로 애니메이션의 음악감독을 맡은데다 한·중·일이 공동 제작과 투자를 맡은 글로벌 프로젝트로 3개국은 물론 아시아 영화 산업 차원에서도 한 획을 그을만한 프로젝트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함께 즐길 수 있는 힐링 무비로 일찌감치 주목을 받은 덕분에 태풍 ‘콩레이’로 상영시간 내내 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서도 수백명의 관객들이 엔딩 크레딧 이후 쿠키영상이 나올 때까지 자리를 지켰고 제작진 자리로 찾아가 포옹하는 어린이 관객들이 줄을 잇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했다.이 작품은 ‘고 녀석 만나겠다’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한 미야니시 타츠야의 ‘티라노 사우루스’ 시리즈 중 12권 ‘영원히 함께해요’를 원작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으로 ‘명탐정 코난’으로 잘 알려진 시즈노 코분 감독이 연출을, ‘아톰’ ’밀림의 왕자 레오’ 제작사인 일본의 애니메이션 명가 데쓰카 프로덕션이 제작을 맡았고 역대 일본 영화 흥행 1위로 올라선 ‘너의 이름은’(신카이 마코토 감독) 국내 수입사인 미디어캐슬의 강상욱 이사가 총괄 프로듀서로 활약했다.
6일 해운대그랜드호텔 스카이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시즈노 감독은 ‘안녕, 티라노’를 “세계 곳곳에서 분쟁과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데 푸논과 티라노처럼 차이를 인정하고 동행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생김새도 살아가는 방식도 다르지만 애니메이션 속 푸논과 티라노는 서로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친구가 되고 이들의 동행은 생존을 위해 반목하던 공룡사회를 바꿔놓게 된다.
푸논과 티라노가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한 것처럼 이 영화 역시 한국의 기획력, 일본의 제작 역량, 중국의 자본과 인력이 합쳐져 탄생했다. 강상욱 이사는 “재미있으면서도 품질 높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으로 세계 최대 애니메이션 강국인 일본과 손을 잡고 자본은 물론 채색·원화 작업 인력이 풍부한 중국의 참여를 이끌어냈다”며 “제작자나 스태프에게는 각자의 국적이 있지만 완성된 영화에는 국경이 없다는 생각으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제작했다”고 소개했다.
세계적인 거장 사카모토 감독이 음악감독으로 합류하게 된 배경도 소개됐다. 시즈노 감독은 “기획 단계에서 사카모토 감독이 음악을 맡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을 때 농담을 하는 줄 알았는데 강 이사의 뜨거운 열정 덕분에 사카모토 감독이 음악을 맡게 됐다”고 귀띔했다. 시미즈 요시히로 데쓰카 프로덕션 대표는 “대사도 없고 채색도 하지 않은 그림만 보고 사카모토 감독은 모든 음악을 완성해야 했다”며 “데쓰카가 아니면 사카모토에게 이런 식으로 작업을 맡길 수 있는 제작사는 없을 것”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사카모토 감독은 “한·중·일 3국이 공동제작을 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고 참가할 의의가 있겠다고 생각했다”면서도 “어린 시절부터 ‘철완 아톰’을 보고 자란 세대이고 아톰 감독인 데쓰카 오사무 선생님을 존경했기에 실사영화보다 훨씬 어려운 작업이었지만 데쓰카 프로덕션의 제의를 기쁘게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그는 “보편적인 요소로 현재를 표현하면서도 나의 개성을 드러내고 싶어 고민이 컸다”며 “음악을 만들 때는 선의 움직임만 보고 모든 것을 상상하며 작업해야 했고 폭넓은 관객층을 이해시켜야 한다는 점 때문에 큰 도전이었는데 이번 영화제에서야 완성본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부산=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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