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턱시도를 차려입은 이탈리아 세비야의 바람둥이 돈 조반니가 우연히 결혼식장을 지나가다가 우아한 드레스로 치장한 신부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그녀의 이름은 체를리나. 돈 조반니는 솜씨 좋게 신랑을 따돌리고 신부를 데리고 빠져나오는 데 성공한다. 조각 같은 외모에 화려한 언변까지 갖춘 이 남자는 달콤한 사랑의 언어로 여자를 유혹한다. 처음엔 어쩔 줄 몰라 하며 망설이던 체를리나는 “그대의 운명을 바꿔주겠다”는 돈 조반니의 말에 키스를 허락하고 품에 안긴다.
클래식 공연 기획사인 아트앤아티스트가 지난 5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선보인 오페라 콘체르탄테 ‘돈 조반니’의 한 장면이다. 오페라 콘체르탄테는 무대 장치를 없애고 의상을 최소화한 형식의 오페라를 뜻하는 말로 ‘콘서트 오페라’라고도 부른다. 이날 열린 공연 역시 이러한 형식에 걸맞게 스테이지의 한복판을 코리아 쿱 오케스트라가 장악한 가운데 배우들은 무대 앞뒷면과 측면을 오가며 열연을 펼쳤다.
이번 공연은 돈 조반니가 기사장 딸인 돈나 안나 집에 침입했다가 기사장과 맞닥뜨리자 그를 살해하고 도망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의 줄기를 그대로 따라가면서도 형식의 차이점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접하는 듯한 느낌을 관객들에게 안겨줬다. 배우들의 화음과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이 작품은 ‘서사의 옷을 입힌 클래식’ 같기도 했고 ‘요란한 치장 대신 음표와 선율에 집중한 오페라’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돈 조반니’는 모차르트가 대본 작가 로렌조 다 폰테와 함께 만든 3대 작품 중 하나로 1787년 초연 이후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오페라 중 하나로 꼽힌다. 박제성 음악 칼럼니스트는 “돈 조반니와 체를리나의 이중창은 아름답고 향기 가득한 멜로디 덕분에 훗날 베토벤과 쇼팽 등 여러 작곡가들이 이 노래를 바탕으로 변주곡을 만들었다”며 “극적인 서사 구조와 음악적 긴장감을 동시에 갖춘 오페라가 바로 ‘돈 조반니’라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희대의 바람둥이가 펼치는 연애 활극을 그린 작품인 만큼 관객들은 돈 조반니를 연기한 베이스바리톤 우경식에게 가장 큰 박수를 보냈다. 그는 독일 킬 국립극장의 주역 솔리스트로 8년 동안 400회가 넘는 무대에 섰던 성악가다. 우경식은 능청스럽고 영악한 호색한에서 지옥의 나락으로 파멸하는 캐릭터의 큰 진폭을 훌륭히 소화했다. 조연들 가운데 특히 돋보인 배우는 돈나 안나의 약혼자인 돈 옥타비오를 연기한 테너 박승주였다. 그는 아버지를 잃은 상실의 아픔으로 힘겨워하는 약혼녀의 옆에서 “그녀 마음 평온해야 내 마음도 평온해지네/ 그녀가 즐겁지 않으면 나도 즐겁지 않아”라고 노래하며 위엄 가득한 고전적 캐릭터의 전형을 제대로 그려냈다. 각각 체를리나와 돈나 안나로 분한 소프라노 정혜욱과 소프라노 한지혜도 극에 어울리는 성실한 연기를 보여줬다.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사진제공=아트앤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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