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7일 평양에서 진행된 비핵화 협상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5시간 반에 걸쳐 심도 있는 밀담을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8일 “오찬을 제외하고 2시간씩 진행된 오전과 오후 면담에는 북측에서 김 위원장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통역만 배석했다”고 밝혔다. 폼페이오의 주력 채널이던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은 오찬에만 참석했을 뿐 면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군 출신 ‘강경파’로 평가되는 김 부위원장을 배제하고 직접 폼페이오 장관과 협상을 진행한 것은 북측이 비핵화 협상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선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북미정상회담 조기 개최를 비롯해 향후 비핵화 프로세스도 빨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다만 비핵화의 핵심인 ‘핵 신고’에 대한 언급이 사라진 것은 비핵화의 ‘내실’ 측면에서 부정적 요소라는 평가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2차 북미정상회담이 가급적 조기에 개최되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에 큰 진전을 이룰 수 있도록 한미 간의 긴밀한 협력과 공조에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앞서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가급적 빠른 북미정상회담’을 언급한 것과 궤를 같이하는 발언이다. 청와대가 이처럼 북미정상회담 조기 개최에 방점을 찍는 것은 미국 중간선거(11월6일) 전에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이 비핵화 불확실성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북미정상회담을 대하는 미국의 셈법은 다를 것으로 보여 회담 조기 개최는 여전히 장담하기 어렵다는 게 외교가의 관측이다. 북미가 이제야 ‘빈 채널’을 가동해 실무협상을 시작한데다 현재까지 드러난 비핵화 카드가 미국 보수층의 기대치에는 못 미치기 때문이다. 결국 중간선거 판세를 분석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정무적 판단이 회담 시기 결정의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북미정상회담 장소로는 극적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미국 워싱턴을 비롯해 판문점과 평양 개최 가능성이 거론된다.
북미정상회담의 시기보다 중요한 문제는 김 위원장과 폼페이오 장관이 무엇을 주고받았느냐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방중에 앞서 “김 위원장이 국제사찰단의 방북을 허용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의전·수송 등 문제가 합의되는 대로 사찰단이 풍계리 핵실험장과 미사일 엔진시험장을 방문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장의 사찰에 북미가 합의를 이뤘다는 얘기다. 평양공동선언과 연계해 이를 분석하면 ‘풍계리·동창리 핵시설 사찰 →미국 상응 조치(종전선언) →영변 핵시설 폐기 및 사찰의 프로세스’가 가능하다. 폼페이오 장관은 중국 방문 일정에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문제도 긴밀히 협의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김 위원장과 폼페이오 장관이 밀도 있는 면담을 나눈 만큼 이에 더한 비핵화 조치가 이번 북미회담에서 거론됐느냐가 협상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북미협상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발언 등은 아직 미온적이고 정제돼 있다. 이에 따라 평양공동선언에서 나온 비핵화 조치를 넘어서는 방안을 도출하는 데 실패한 것 아니냐는 회의론도 제기된다. 이에 더해 폼페이오 장관이 “남북관계의 진전이 비핵화에 대한 진전과 반드시 보조를 맞춰야 한다”고 밝힌 것도 남북 경협 문제 등이 아직 시기상조라는 판단에 따른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윤홍우·박우인기자 seoulbir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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