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튈지 모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에 대응하는 동맹국들의 대응법으로 ‘도넛 전략(doughnut strategy)’이 주목 받고 있다. 미 행정부와 직접 대응을 피하고, 도넛처럼 주위를 에워싸는 네트워크를 구축해 미국 내 우군 확보에 나서는 전략이다.
7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에 있거나 ‘미국 우선주의’로 타격을 입은 동맹국들이 백악관을 우회해 미국과의 유대 강화에 나서고 있다. 일종의 ‘도넛 전략’으로 미 행정부와 정면 돌파 대신 주지사나 의원들과의 교류, 미국인의 호감을 사는 갖가지 문화 행사 등을 벌여 관계를 유지해 가는 것이다.
미국 외교관 양성기구인 외교연구원(FSI) 원장을 지낸 낸시 맥엘도니 조지타운대 교수는 “일부 국가가 도넛 전략을 쓰고 있다”며 “문제가 있을 때 그 중심을 피하고 주변을 에워싸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령 이란 핵 합의, 무역, 북서대양조양기구(NATO·나토) 방위비 문제를 놓고 트럼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운 독일은 내년에 미국 전역에서 통독 30주년을 기념하면서 문화유산에 초점을 맞춘 1,000여 개의 행사를 열 계획이다. 이는 독일의 ‘다 함께 멋지게’ 캠페인으로, 미국인 가운데 독일인 후손으로 추정되는 5,000만 명을 염두에 둔 행사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 속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개정 협상을 타결한 캐나다는 각료와 기업인들을 미국에 수시로 보내고 있다. 이들은 미 연방정부 인사가 아닌 주지사, 시장, 주 의원들을 만나 교역과 같은 주요 사안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콜린 로버트슨 전 캐나다 외교관은 “백악관과 미 의회를 상대하는 외교력 증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캐나다가 인식하게 됐다”고 말했다.
호주는 ‘향수’를 자극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미국 주재 호주대사관은 올해 양국의 ‘100년의 우정’을 축하하는 행사를 벌인다. 이 행사는 1차 세계대전 때 미군과 호주군이 함께 피를 흘린 하멜 전투 100주년에 바탕을 둔 것이다. 호주군의 희생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상기시켜 향후 호주의 군사적 위기 때 도움을 받으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해석이다.
WP는 “이같은 동맹국의 움직임은 역설적으로 세계 무대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동맹국들이 새로운 미 행정부의 등장을 기다리기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2기에 대비하는 차원”이라고 분석했다. /김민정기자 je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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