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핵협상이 교착 국면에서 벗어나 다시 대화 국면으로 진입하면서 지난 9월 이후 잠잠해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연내 방북 이벤트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한반도 문제의 핵심 국가로서 대화 국면에 동참하는 동시에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는 가운데 전통적인 북중 우호 관계 재확인 및 전략적인 자국 이해 확보를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북미 간 종전선언이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되면서 ‘지분’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시 주석의 방북 시점은 아직 불확실하다. 미중관계가 무역을 넘어 안보 분야에서까지 갈등이 확산되고 있어 시 주석의 방북이 미국에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르면 11월이 될 수도 있지만 북미 2차 정상회담, 종전선언 등 한반도 관련 이벤트 결과 여부에 따라 내년 초에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시 주석의 방북 가능성은 문재인 대통령의 8일 발언으로 재점화됐다. 문 대통령은 이날 “조만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과 시진핑 주석의 북한 방문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며 북일정상회담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직접 언급했다.
김 위원장 집권 이후 소원해졌던 북중관계는 한반도 대화 무드 속에 함께 해빙됐다. 김 위원장의 방중에 이어 중국 권력서열 3위인 리잔수 전인대 상무위원장이 9월 북한 정권수립 70주년(9·9절) 기념일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방북하고 베이징 주중 북한대사관에서 열린 기념 리셉션에는 권력 서열 4위인 왕양 전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전국정치협상회의 주석이 참석하면서 올 들어 복원된 북중관계는 더욱 긴밀해졌다. ‘신(新)밀월’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북중관계의 화룡점정은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김 위원장이 올 들어 세 차례나 중국을 직접 찾았기에 시 주석의 답방 없이는 양국 관계 복원의 마침표를 찍을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 최고위급 지도자의 방북은 국가주석의 경우 2005년 10월 후진타오 국가주석 이후 단 한 차례도 없었다. 특히 김 위원장 집권 이후 단 한 차례도 없었다는 점은 북중관계를 ‘혈맹’이라 부르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해왔다. 시 주석의 방북 역시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시절인 2008년 6월 부주석으로서 방문했던 게 마지막이다.
이에 지난 9·9절 시 주석의 방북설이 설득력을 얻었지만 시 주석은 결국 리 위원장을 대신 보냈다. 북미 핵협상 교착 배경에 중국이 있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른바 ‘중국 배후론’에 시 주석이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가뜩이나 무역 문제로 미중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북미 간 전통적인 협력 대상이었던 북핵 문제에서까지 마찰이 생긴다면 미중관계는 더 나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달 평양 남북정상회담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을 계기로 한반도는 다시 대화 국면으로 접어들었고 중국 역시 이런 상황에서 다시 활동 반경을 넓히는 분위기다. 노영민 주중 대사는 “중국은 현 단계에서 종전선언에 참여하고 한반도 평화체제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며 그 부분에 대해 당사국들이 반대하지 않고 있다”며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방북한 뒤 중국의 역할에 관해 긍정적인 발언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중국의 종전선언 참여에 대해 미국이 원칙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인지에 관해 “미국에 이에 대해 그렇게 반대하는 입장은 아닌 것으로 안다”면서 “그러나 상황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고 부연 설명했다.
시 주석의 방북 시점 역시 ‘상황에 따라’ 변동성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과 북한의 각국 사정은 물론 한반도 정세의 예민함으로 북미정상회담 이후 이뤄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는 “북미정상회담 이전은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며 “적어도 북미회담 이후가 될 가능성이 크고 북미회담 결과나 자국 사정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해를 넘길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재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중국은 한반도 정세에 변화가 올 때 자국의 이익을 관철시켜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북중관계를 좋게 가져갈 수밖에 없다”며 “제재완화 지원, 경제협력 등을 조건으로 북핵협상 이후 북중관계를 이어가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홍병문특파원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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